[@뉴스룸/유재동]가벼워진 ‘금통위 의사봉’

  • Array
  • 입력 2012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보나마나 동결이겠죠.”

몇 달 전부터 경제전문가들을 만나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 대한 전망을 물으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이다. 그냥 ‘동결’도 아니고 ‘보나마나 동결’이다.

매달 열리는 금통위는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금통위원들의 결정에 따라 수백조 원의 시중 자금이 움직인다. 금융기관의 채권 딜러들은 금통위 직후 TV로 생중계되는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회견을 듣기 위해 이날은 점심 약속도 하지 않는다. 총재의 한마디 한마디가 점심을 거를 정도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매달 통화 정책방향 발표문에 실리는 문장을 조사(助詞) 단위까지 깊이 있게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금통위의 결정이나 한은 총재의 말을 시장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은 내부에서조차 구내 스피커로 중계되는 총재 기자회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간다는 말이 나온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다. “경기(景氣)를 살리자니 금리를 내려야겠는데 그러면 또 물가가 문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기준금리는 이달까지 10개월째 동결됐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할 말은 있다. ‘동결도 인상이나 인하만큼 중요한 결정’이란 것이다. ‘금통위 실종’이니 ‘한은 존재의 의미 상실’이니 하는 비판에 대한 대응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금리 결정은 한 나라의 내로라하는 통화·경제전문가들이 모여 수백 쪽에 달하는 보고서와 자료를 검토하고 고심 끝에 내리는 결론이다. 그런 금통위에 “10개월 동결했으니 10개월 간 일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금리 동결의 배경에 대한 의문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금통위가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쳤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성장과 물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은 총재가 금통위에서 두드리는 의사봉(議事棒)의 무게감이 줄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은에 대한 불신은 그동안 정부의 물가정책에 대한 비판과 맥이 닿아 있다. 금리는 환율, 재정과 함께 주권국가가 펼 수 있는 핵심 경제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이런 요긴하고 중요한 권한을 장롱 속에 모셔둔 채 ‘두더지 잡기’식 물가관리에 치중한 인상이 짙다.

정부는 물가실명제를 한다며 ‘배추국장’ ‘고추국장’을 임명하고 물가 정책에 비협조적인 기업을 불러다 윽박질렀다. 역대 정권처럼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각종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가격이 ‘묘한’ 품목을 눈에 불을 켜고 수색했다. 장관이 나서서 직접 생산원가를 계산해보겠다며 기업을 협박까지 했다. 물가에 관한 국민적 관심을 감안할 때 이런 노력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긴 어렵지만 그런 미봉책은 근본적인 물가 대책이 될 수 없다.

사실상의 세금 급식인 무상급식 등 복지정책으로 올해 끌어내린 물가도 0.4%포인트나 된다. 재정을 투입해 물가를 잡는 꼴이 됐으니 나중에 정부 곳간이 바닥나면 장바구니에 또 어떤 충격이 생길지 걱정이다. 상당수 국민이 지금 저성장보다 고물가에 더 민감한 이유는 그간 성장의 낙수(落水)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 없는 복지가 사상누각인 것처럼 물가 안정 없는 성장도 분명히 한계를 지닌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금통위#금리동결#물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