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카지노도 금융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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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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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미국 네바다주립대의 ‘카지노 규제통제(Control&Regulations)’ 수업 중에 섀넌 바이비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네바다 주정부의 도박면허 발급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까다로운지를 시사하는 대목인데 내용은 이렇다. 그의 먼 친척이 도박감독위원회(Gaming Control Committee)에 카지노면허를 신청하자 사설신용조사기관의 직원이 찾아와 캐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후조사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하기에 자신에게까지 왔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걸작이었다. “당신이 966번째”라는 것이었다.

네바다 주 도박법(Gaming Act)은 까다롭기 이를 데 없다. 사소한 사건이라도 형을 선고받았다면 도박면허는 언감생심이다. 국내에서만이 아니다. 밖에서도 같다. 도감위는 면허 신청이 접수되면 사설신용조사기관에 신상정보 수집을 의뢰한다. ‘966번째’라는 말은 조사대상이 1000명도 넘는다는 뜻이다. 기간도 일정치 않다. 그렇다 보니 수백만 달러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것도 신청자 몫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고도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면허 발급이 까다로운 만큼 허가된 카지노에 대한 통제와 규제도 철저하다. 카지노의 부정행위(탈세, 조직범죄, 사기) 대가는 가혹하다. 궁극적으로 ‘퇴출’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렇듯 어렵게,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발급받은 도박면허를 그깟 몇십만, 몇백만 달러에 포기할 바보는 없지 않은가. 카지노 모르게 직원이 저지른 부정행위도 마찬가지다. 개인 처벌에 그치지 않는다. 카지노도 함께 진다. 그러니 카지노가 도감위보다 더 철저히 부정행위 예방과 단속에 나선다. 이런 ‘내부통제(Internal Control)’는 네바다 주가 개발해 53년째 실시하는 효과적인 자율규제시스템이다. 도감위는 규제통제의 방향과 기준만 정한다. 실무규정은 카지노가 정해 자율적으로 관리한다. 미국 48개주 대부분이 이 시스템을 채택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네바다 주처럼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카지노 등 사행산업을 일률적으로 규제통제하는 ‘도박법’이 없다. 그러니 감독위원회와 실행기구(Gaming Control Board)도 없다. 규제통제를 하기는 해도 중구난방이다. 허가 주체, 모법(母法), 기준, 처벌이 관할 부처별로 제각각이다. 미국은 사행산업을 은행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권’으로 간주한다. 연방법을 보자. 카지노 경마 복권 등 사행산업은 재무부가 관할한다. 카지노를 들여다보면 왜 그래야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칩스(Chips·현금 대신 통용되는 게임머니)라는 ‘발권’ 기능에 크레디트(Credit·노름빚)란 대부 기능까지 수행하는 ‘중앙+시중은행’의 ‘슈퍼 뱅크’이기 때문이다.

도박에 부정이 깃들 수는 있어도 반복은 용납되지 않는다. ‘게임’의 생명인 ‘공정성’ 유지란 내부통제력이 상실돼서다. 이 경우 미국에선 ‘폐쇄’다. 강원랜드를 보자. 직원 4명의 수표 9억1500만 원 횡령(지난해 7월 감사원 보고)에 이어 카드통 몰래카메라 사건까지 드러났다. 부정은 12년간 끊인 적이 없다. 내부통제가 기능했다면 이럴 수 있을까. ‘폐쇄’를 규정한 도박법이 필요한 이유다. 부실 카지노도 저축은행처럼 퇴출돼야 한다. 왜. 금융권이니까.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카지노#금융기관#네바다#도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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