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간인 불법 사찰, 청와대는 침묵만 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재 공직복무관리관실) 점검1팀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벌인 사찰 내용과 결과보고서가 담긴 문건 2619건이 공개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본래 조사대상인 고위직 공무원과 공기업 임원이 아닌 언론인과 민간인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이 공공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계속 운영되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이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가 그해 3개월여 끌던 촛불시위가 끝난 뒤 부활했다. 문건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비판한 정태근 의원은 물론이고 정 의원과 만난 개인사업가 박모 씨도 뒷조사를 했다. 촛불집회 당시 대통령 패러디 그림을 병원 벽보에 붙였던 서울대병원 노조도 감시 대상이었다.

문건 곳곳에 ‘BH(청와대) 하명’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청와대의 요청에 의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조사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청와대의 관심사항을 좇아서 정밀 조사한 흔적이다. 문건의 상당 부분이 동향 파악이나 첩보 정리 수준일 가능성도 있지만 월권(越權)이나 불법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노출된 문건은 서울중앙지검이 2010년 7월 수사에 착수해 사찰 실행팀과 증거 인멸팀을 기소할 때 수사기록에 포함한 CD를 복사한 것이다. 정부는 당시 문건 내용에 대한 검찰 조사가 끝났다고 해명하지만 1차 검찰 수사가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현 정부의 대통령법무비서관을 지낸 강훈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다해 그만둔 게 아니다. 수사를 억지로 그만 좀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발언대로라면 수사 축소를 위한 외압(外壓)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거론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4·11총선에서 현 정부 심판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검찰이 수사 중인 만큼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다. 얼마 전에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자료삭제의 몸통’이라고 우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민간인 불법사찰에 누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고백할 때가 됐다.
#사설#민간인불법사찰#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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