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강연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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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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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국제부 차장
김동원 국제부 차장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한참이나 바라봤다.

어제(20일자) 동아일보 A1면에 실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요즘 모습이 그랬다는 얘기다. 당당한 카리스마로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세계 지도자로 우뚝 섰던 그도 세월 앞에서는 동네 할머니였다. 런던공원에서 편안하지만 기품 있는 모습으로 이웃 주민과 함께 강아지를 지그시 보는 모습에서 오히려 ‘영국의 힘’까지 느껴졌다.

얼마 전 모임에서의 일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최근 동향은 워낙 베일에 싸여 있어 누가 병원에 입원한 게 유일한 소식이라는 등 고위직의 퇴임 이후가 화제였다.

이 자리에서 고위관료 출신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도 퇴임하면 아예 1년 중 절반을 해외에서 ‘다이내믹 코리아’ 강연을 하면서 보내는 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자칫 퇴임 후 사회와 단절하는 이른바 독거(獨居)선생이 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경력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해낸 경험, 힘겨웠던 국정운영 사례를 전파하는 것은 특히 개발도상국들에 소중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견해였다.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과 관련해 의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게 연금 지급을 제한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강연 등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게 연금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였다.

현재 활동 중인 전직 대통령은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4명이다. 이 중 클린턴은 2001년 퇴임 후 강연과 집필 등으로 7000만 달러(약 790억 원) 이상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 W 부시도 은퇴 후 1500만 달러(약 170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은근히 부러웠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국가지도자가 세계 각지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모습이 퍽이나 보기 좋다는 얘기다.

한국은 어떤가.

상당수 전직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다. 살아계신 분들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못한다고 해야 사실에 가깝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인근에는 경호동(棟)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유지가 있다. 얼마 전 서울시가 이 땅에 대해 4월 말로 무상사용 기간을 끝내겠다고 밝히자 파문이 일었다. 당시 누리꾼들은 전 전 대통령의 세금체납 등을 들어 “무상사용 중인 시유지를 당장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경호를 과도하게 해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고위직 인사들이 퇴임 후 왕성한 강연이나 집필로 경험을 전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는 사례를 찾기는 참 드물다. 대신 고수익이 보장된 로펌(법률회사)으로 줄줄이 달려가는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다. 전직 국가지도자들이 해외 강연도 하고 책도 써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내친김에 클린턴이나 부시 전 대통령처럼 돈을 너무 벌어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법안이 워싱턴이 아닌 여의도 국회에도 제출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지나칠까.

지도자가 노년의 안온(安穩)한 일상을 보내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는 게 선진국 여부를 가늠하는 또 다른 잣대이기 때문이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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