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심영섭]노모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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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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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영화평론가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영화평론가
다음의 사항을 한번 체크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휴대전화를 찾는 일이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답답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출근하다 집에 두고 온 휴대전화를 찾느라 되돌아간 적이 있다. △휴대전화 사용에 몰두하다 자칫 사고가 날 뻔했다. 위의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노모 포비아’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노모 포비아란 휴대전화가 없을 때 느끼는 공포증으로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준말이다.

인터넷 보안업체 시큐어엔보이는 최근 영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노모 포비아, 즉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았을 때 공포를 느낀다고 발표했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노모 포비아는 더 심해 18∼24세 응답자의 경우 노모 포비아 응답률이 77%나 됐다고 한다.

왜 휴대전화 공포증일까. 사람들은 물 공포증이나 고소 공포증으로 괴로워하지만 옷 공포증, 안경 공포증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휴대전화 없이 산다는 게 생활의 위협이 될 정도로 휴대전화가 인간 내면의 핵심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다.

‘작은 물건들의 신화’를 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세르주 티스롱은 휴대전화처럼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모든 용도로 쓰이는 만능 물건도 드물다고 주장한다. 소비, 관람, 정보 찾기, 대인관계, 감성 자극. 즉 휴대전화는 아파트 벽에 고정돼 있는 전화기보다는 다용도 스위스 칼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을때 느끼는 공포증


만약 내가 무너지고 있는 무역센터 빌딩 안에 있거나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나의 위급상황을 알릴, 내 존재를 알릴 방법은 무엇인가. 십중팔구 아니 십중십 우리는 휴대전화를 찾을 것이다. 휴대할 정도로 작지만 아주 멀리까지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히 큰 신적인 물건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것은 모든 욕망의 지연 현상을 한 번에 없애 준다. 누구를 기다릴 필요도, 누가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거리와 속도가 결합이 되면서 섹스 상대든 맛집이든 스마트폰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는 이드(id)의 욕망을 더없이 잘 구현한다.

또한 그것은 나의 대리 뇌로서 나 자신의 모든 은밀한 정보들, 각종 비밀번호, 기념일,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조차 친절히 알려 준다. 휴대전화는 비서이고 조력자이며, 친구이자 우상이다. 내가 외로울 때, 심심할 때 절망적 고독에 빠지는 대신 사람들은 휴대전화의 버튼을 터치한다. 휴대전화가 제공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보여주고 확인시켜 준다.

무엇보다도 휴대전화는 개인으로 있고 싶은 욕망과 군중으로 함께하고 싶은 욕망, 즉 낮과 밤같이 양립 불가능했던 개인화의 욕망을 자유자재로 충족시켜 주고 있다. 휴대전화가 발명되기 전에는 한 개인이 무리 속에서 혼자 있고 싶은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조용히 고개 숙인 채 손가락 하나만 움직임으로써 시어머니 잔칫상을 앞에 두고도 스페인으로 여행 간 친구와 트위터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결국 휴대전화는 욕망의 거울이고, 외부와 나를 잇는 전자 탯줄이며, 나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작은 나(Mini-me)’이다. 역사상 어느 물건도 인간의 목구멍 깊숙한 욕망을 이렇게 즉각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광범위하게 만족시켜 준 물건은 없었다. 휴대전화는 아이들이 항상 끌고 다니는 누덕누덕한 이불처럼 일종의 디지털 시대의 안전판이자 중간 대상 같은 심리학적인 중요성마저 지닌다.

그렇다면 휴대전화의 만능성은 디지털에 중독되는 현대적 삶에 면죄부를 받게 해줄까. 문제는 이 디지털 시대의 총아가 보여주는 많은 것들이 일종의 ‘허상’이라는 것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대략 5억 명의 친구를 지닌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조차 실은 참된 친구 5명도 가질 수 없는 모순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삶의 방식 한번쯤 되돌아봐야


6개월간 모든 디지털 생활을 금욕한 후 ‘로그 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을 쓴 수전 모샤트는 디지털 권리장전(Digital Bill of Rights)이란 용어를 쓰면서, 지속적으로 온라인에 접속한 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사는 삶은 반쪽짜리 삶이고, 제대로 깊이 있게 삶을 살려고 하는 노력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떻게 ‘휴대전화 이후’의 삶을 헤쳐 나갈 것인가.(이것마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순절의 금식이나 여름방학처럼 디지털 해독 기간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병 주고 약 주는 노모 포비아 증후군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한 번쯤 멈춰 서서 뒤돌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노모 포비아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곧 정신의학편람(DSM)에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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