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명숙 ‘좌우 양다리 걸치기’ 무책임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어제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정권 교체를 하면 재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몰려가 ‘폐기’를 주장하다가 여론의 역풍이 일자 ‘정권교체 후 선(先) 재재협상, 후(後) 폐기’로 내부 방침을 정리하더니, 어제는 ‘폐기’란 말은 꺼내지 않고 ‘재협상’이라고 표현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정책연대 협상에서는 진보당의 ‘폐기’ 주장이 부담스러웠는지 ‘재협상’과 ‘폐기’를 병기하고는 ‘시행에 전면 반대한다’라고 합의 문구를 조정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총선에서 야권 단일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반미종북(反美從北) 성향의 정당과 손잡으면서 보수 및 중도 유권자들의 불안을 달래려고 ‘좌우 양다리 걸치기’를 하는 인상이다.

한 대표는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한미 FTA는 국익과 민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글자 하나 안 바꾼다더니 굴욕적으로 바뀌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내용이 굴욕적인지는 언급하지 않고 “내용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핵심”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했다. 민주당이 재협상을 주장하는 10개 항목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고쳐진 것은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항 정도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한미 FTA가 빨리 발효될수록 좋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대표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안보 차원에서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합의하에 가장 바람직한 장소에 건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약속한 야권연대를 끌어안으면서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유권자의 표도 잃지 않겠다는 이중 플레이다. 정책은 비용과 편익을 따져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인데, 한 대표의 말을 듣다 보면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는 “‘공천에서 친DJ(친김대중)가 몰락하고 친노(친노무현)가 살았다’는 표현은 언론이 민주정부 10년을 둘로 가르는 분열적 사고”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한광옥 전 대표가 한 것이다. 한 대표는 친DJ 지지자와 친노 지지자들의 표를 모두 챙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당이 진보당의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했으면서도 돌아서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무책임한 태도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심판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면서 국민의 버림을 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하지 않는 모습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뒤가 다른 말을 하는 한 대표의 정체성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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