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중현]한국판 프로메테우스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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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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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 차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프로메테우스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먼저 아는 자’ 또는 ‘선각자(先覺者)’라는 뜻이다. 티탄족(族)의 신인 그는 진흙을 빚어 처음 인간을 만들었고,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선물했다. 현대 사회에서 프로메테우스에 가장 가까운 인간형은 어떤 사람들일까. 과학자, 예술가, 연예인, 정치인? 나라면 기업인을 꼽겠다.

지난해 말 타계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빼닮았다. 창의력으로 빚어낸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아름다운 제품들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그가 제품을 만들고 이름 붙여 세상에 내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삶에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불을 받기 전 원시의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도 프로메테우스를 닮은 기업인들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 장과 모래사장을 찍은 조선소 터 사진만 들고 대형 선박들을 수주해 조선(造船)대국의 문을 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싸구려 전자시계나 만들던 한국에서 모험적 투자를 감행해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을 일궈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등이 대표적이다.

후계자들도 그런 전통을 이어왔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엉성한 짜임새로 미국 토크쇼 단골 농담거리였던 현대차를 세계적인 품질의 차로 바꿔 놨다. 모토로라 흉내 내기에 급급하던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집념으로 애플보다 많은 스마트폰을 파는 회사가 됐다.

이쯤 되면 존경받을 만한데도 한국의 프로메테우스인 대기업들은 요즘 동네북 신세다. 선거철을 맞아 정치권은 이들을 ‘공공의 적(敵)’으로 몰아세운다. 한 대의 아이폰도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고, 중국 하청공장의 비인간적 처우로 비판을 받는 애플은 최근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에 올랐다. 반면 35위로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50위 안에 든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대기업 때리기의 표적이다.

그러면서도 정치권이 선심 쓰며 내놓는 정책의 부담은 모조리 대기업 몫이다. 새누리당은 기업 정년 60세 연장을 의무화하는 공약을 내놨다. 민주통합당은 법인세 증세와 함께 대기업이 청년 미취업자를 매년 정원의 3%씩 의무 고용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마저 일자리를 늘리려고 휴일근무를 연장근로 시간에 포함시키겠다면서 줄어들 근로자 임금 보전과 추가 고용의 비용은 기업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각각 필요한 정책이라도 이런 부담을 한꺼번에 떠안고 수익을 낼 기업이 몇이나 될까.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간은 밤마다 자라나 아침이면 다시 쪼임을 당했다. 한국의 프로메테우스들도 비슷한 수난을 겪고 있다. 때리는 대로 맞으며 납작 엎드려 있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업체 쥐어짜기 등 자업자득인 면이 있어도 수출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걸 생각하면 억울할 만하다.

대기업 집단 학대에 열중한 정치인과 일부 국민은 잊고 있다. 기업과 기업인은 불사(不死)의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는 걸.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들의 간은 재생(再生)의 힘을 잃고 수명을 다한다. 아무리 괴롭혀도 곁에 남아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낼 것이란 생각도 큰 착각이다. 쇠사슬로 묶인 게 아니어서 해외로 도망갈 수도 있다. 낙타는 항상 마지막 깃털 하나의 무게로 넘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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