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지금은 함께 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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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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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솔직히 3주마다 돌아오는 이 칼럼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에 나온, 흥행에도 실패한 영화라는데…. 주변에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예전에 봤다는 한 친구의 “무지 슬픈 영화였다”는 말에도 “뭐, 그럼 뻔한 얘기겠네”하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을 넘기다 영화 ‘크로싱’ DVD를 구해 봤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탈북한 한 남자의 참혹한 고통을 보면서 가슴 저릿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곤 그동안 북한에는 관심을 두면서도 정작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무심했는지, 얼마나 마음의 벽을 쌓고 지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됐다.

사실 이 영화에 흥행요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는 초현실의 리얼 스토리를 막간의 여유도 없이 밀어붙였다. 어떤 픽션보다 끔찍한 현실의 중압감에 눌린 탓일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영화의 필수요소라는 숨겨진 ‘정치적 코드’도 없다. 그런 탓에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영화가 되고 말았는지 모른다.

엊그제엔 탈북자 강제 북송 항의 시위 현장을 다녀왔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주한 중국대사관 건너편 옥인교회 앞. 탈북자단체와 종교단체, 우파단체들이 매일 집회를 열어 탈북자 이애란 박사 등 단식 농성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릴레이 하루단식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야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의 인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야권의 잠재적 대선후보라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깜짝 방문했고, 민주통합당 현역 의원으론 정범구 의원이 조용히 다녀간 게 전부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선 “민주당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냐” “탈북자가 도롱뇽보다 못하다는 얘기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인권과 자유를 외치며 반독재에 앞장섰던 세력은 좌파였다. 반면 압축성장을 위해 개발독재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던 게 우파다. 그러나 북한 인권에 대해선 그 반대다.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에 좌파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한국적 특수성을 앞세우던 우파는 그런 침묵을 탓하고 있다.

좌파는 “우리라고 왜 외면하겠느냐.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을 키워 중국을 자극하면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관영 매체를 동원해 보복을 경고하고 있다. 그간의 ‘조용한 외교’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내던 정부도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벌어졌다. 수십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더는 중국의 선처만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애타게 그들을 기다리는 국내의 가족은 오죽하겠는가. 다행히 중국도 주춤하고 있다. 당장 북송될 것 같던 탈북자들은 아직 중국 수용소에 남아 있다. 중국은 급파된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탈북자 접근도 막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공감(empathy)의 힘이리라. ‘인권의 발명’의 저자 린 헌트는 18세기 서구 인권운동의 태동은 서한소설(편지 교환 형식의 픽션)의 폭발적 인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소설을 읽으며 타인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공감이 확산되면서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영상매체는 이 시대의 서한소설이다.

지금은 함께 울어야 한다. ‘크라이 위드 어스’를 들으며 소리 내 울지 않더라도, 눈시울을 붉히진 않더라도, 최소한 공감을 나눠야 한다. 동정과 연민을 넘어서는 공감의 힘은 냉담한 이성 속에 묻어둔 양심을 움직일 수 있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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