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패배라는 이름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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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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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국제부 기자
정양환 국제부 기자
그는 실패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세네갈 가수 유수 은두르(52). 국내엔 낯설지만 월드뮤직계의 거성이다. ‘세븐 세컨즈’ ‘인 유어 아이즈’ 등으로 영미 차트에도 자주 올랐다. 2005년 아프리카인 최초로 그래미상 수상. 지난해 예일대는 음악적 공로를 인정해 명예박사학위를 줬다.

스무 살 데뷔 후 그는 줄곧 상한가였다. 내는 앨범마다 히트를 쳤다. 수완도 남달라 손댄 사업은 모두 성공했다.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적극 나서 칭찬도 자자했다. ‘세네갈의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의 마이클 잭슨’. 부와 명예를 양껏 거머쥐었다.

승승장구하던 은두르의 시련은 지난해 시작됐다. 뜬금없이 정치에 뛰어들어 올해 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치판이 만만한 곳인가. 온갖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겨우 꾸려가던 선거운동도 1월 폭탄을 맞았다. 대법원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후보 등록을 무효화했다. 결국 지난달 26일 치러진 대선엔 출마조차 못했다.

부러울 게 없던 슈퍼스타는 왜 하필이면 대통령 자리를 넘봤을까. 은두르는 “진짜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라고 술회했다.

“세네갈은 밖에서 보면 ‘아프리카치곤 안정된 국가’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큰 내전이나 유혈충돌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이번 대선으로 자칫 ‘장기독재’란 나락에 빠질 수도 있어요. 이를 세상에 알리려 출마한 겁니다. 유명 가수가 나오면 최소한 관심은 모으잖아요. 전 이 땅에 ‘빚’이 있거든요.”

은두르가 말한 장기독재의 장본인은 압둘라예 와데 현 대통령(85)이다. 2000년 집권해 재선을 거쳐 12년째 권좌를 지켜왔다. 그럼에도 3선 금지법을 무시하고 또 대선에 출마했다. 2001년 법이 제정돼 자신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단 논리였다. 응당 저지에 나서야 할 야당은 사분오열돼 서로 물어뜯기 바빴고…. 국민들은 ‘국민 가수’가 나서주길 원했다.

처음엔 은두르도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빚 부담이 컸다. 그는 사실 현 집권세력의 조력자였다. 야권 인사 시절엔 청렴과 개혁을 표방한 와데를 그는 ‘세네갈의 희망’이라 불렀다.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투사’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밀실인사와 이권개입, 야권탄압을 저질렀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아들에게 세습까지 준비 중이다. 더는 묵과할 수 없었던 은두르는 국민의 뜻을 따랐다. 하지만 정부가 사주한 걸로 추정되는 법원의 결정에 출마 기회마저 막혔다.

그의 부채 탕감은 이대로 끝이 날까. 미 CNN뉴스는 1일 “현 대통령이 과반수를 획득해 1차 투표로 끝나리란 예상은 빗나갔다”고 전했다. 와데가 1위는 했으나 득표율이 약 30%에 그쳐 결선투표가 불가피하다. 여전히 그가 우세하지만 15명의 야당 후보가 난립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처음과는 상황이 다르다. 현지 언론은 “은두르의 출마를 저지한 게 국민적 공분을 샀다”고 분석했다.

은두르는 대선에 출마하진 못했지만 계속 유권자와 만났다. 그리고 하나만 강조했다고 한다. “우리도 재스민 혁명을 꽃피울 수 있다. 당신은 그 씨앗을 손에 쥐고 있다.”

‘세네갈의 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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