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하철 범죄 대처 ‘112 신고정신’ 높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7일 03시 00분


승객으로 붐비는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여중생이 치한에게 성추행을 당하는데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봉변을 당한 여중생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눈을 깜빡이며 도움을 청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범인인 18세 소년의 큰 덩치에 눌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소녀가 다수의 승객 속에서 느꼈을 공포와 무력감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범인이 성폭행하기 위해 남자 장애인 화장실로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한 시민이 역무원에게 신고해 여중생이 구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하철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2088건에서 2010년 3030건으로 45.1% 증가했다. 성폭력이 44%(1342건)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이 폭력(24.6%)과 절도(20.1%)다. 성폭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소매치기 같은 절도는 피해자보다는 주변 목격자가 빨리 알아챌 가능성이 크다. 어느 경우든 목격자가 신고정신을 발휘하면 지하철 범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1964년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젊은 여성인 키티 제노비스가 강도에게 끌려가며 피살당하는 모습을 38명이 목격했으나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사회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사건으로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지난해 중국 광둥(廣東) 성의 번잡한 시장거리에서 두 살배기 여아가 승합차에 치여 쓰러진 뒤 두 번 더 자동차에 치였는데도 18명의 행인은 그냥 지나쳤다. ‘누군가가 신고하겠지’ 또는 ‘신고해 봐야 귀찮은 일만 생길 것’이라는 방관자 의식 때문에 인명을 구하지 못한 사례다.

폭력 따돌림 등 학교폭력도 다수의 방관자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범죄의 칼끝이 언제 자신을 향할지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는 따돌림이나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사람까지 처벌하는 ‘왕따 추방법’이 추진되고 있다. 법제도 도입 이전에 ‘나도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시민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옳다.

국민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는 세상이다. 지하철에서 범행 현장을 목격한 승객이 ‘112’만 누르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소리를 내기 두려우면 ‘112’로 문자를 보내도 된다. 범죄는 군중의 방관과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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