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하]막강해진 국민연금 의결권, 정치적 이용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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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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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하이닉스반도체 이사 선임과 관련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의결권위원회는 ‘중립’ 의견을 냈지만 위원 중 일부가 이에 반발해 사퇴하고 일부 시민단체는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권한 행사를 주문하고 있다.

이번 하이닉스 의결권 행사는 일회성 해프닝으로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주식회사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국민연금으로 인해 대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6%, 현대자동차 5.9%, 한국전력 5%, 포스코 6.8% 등의 지분으로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현재 350조 원이지만 2024년에는 1000조 원을 넘어서고 2041년 1850조 원으로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 기금 규모로 이 정도의 지배력을 갖는데 기금 규모가 증가하면 사실상 모든 우량 대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재벌 기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엄포와 세무조사 등으로 기업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경영자도 갈아 치울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순환출자 등을 통해 기업을 확장해 왔기 때문에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존재는 더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대기업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민연금의 중립성으로 외국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지켜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일정 한도 이상 지분을 높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해외 투자를 무작정 확대할 수도 없다. 국·공채 투자비율이 지금도 높다는 평가가 다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활용해 대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다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과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으로 유야무야됐다는 얘기가 있다. 현 정부도 초기에는 친(親)기업 성향을 보였지만 공정사회 구현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결권으로 대기업의 불공정성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주요 정강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나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한 대기업의 공(功)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고 앞으로도 대기업 외에는 성장을 견인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을 훼손하거나 기업의 투자 의욕을 감퇴시키는 정치·사회 조건은 우리 경제에 결코 이롭지 않다.

이제 기업과 근로자, 정부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기업이 먼저 변해야 한다. 기업도 100년, 200년을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성장 속에서 투명한 기업윤리로 재무장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도 기업을 상속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상속세 구조와 투명해지는 금융거래 상황으로 볼 때 기업을 후대에 넘기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스웨덴의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이 오래전에 재산을 사회공익재단에 헌납하고 수입금의 대부분을 교육 과학 기술 발전에 환원한 것은 창업주의 숭고한 정신도 있었겠지만 사민당 집권하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위한 배수진을 친 것도 크게 작용했다. 발렌베리재단과 가문이 100년 넘게 경제적 성과를 거두면서 국민기업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하이닉스 이사 선임 문제를 계기로 국민연금도 더욱 엄격하고 구체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을 마련해 국민의 입장에서 시장 중립적인 의결권을 행사해야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서 질타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어느 정파도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생활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이자 한국의 자본시장을 받치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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