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의기]국가기밀 누설 처벌근거 미약… 형법 개정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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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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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육군 주력 전차인 K1A1의 방향장치 설계도면을 미국 업체에 유출하고 수억 원을 챙긴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최근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국가정보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한 설계도면을 국제우편으로 보낼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기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나 영업 관련 기밀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다. 개인정보가 보호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를 봐도 알 수 있다. 기업정보는 기업의 사활과 직결된다. 애플과 삼성의 국제소송에서 볼 수 있듯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개발한 제품의 비밀이 다른 기업에 넘어가면 그 기업은 존망의 기로에 선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가로채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적으로 특허권이나 지적재산권 등으로 보호막을 두껍게 치고 있다.

국가의 비밀은 국가 보호를 위한 것으로 개인의 비밀이나 기업의 비밀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국가 기밀에는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경제적 과학적 군사적 정보가 모두 포함된다. 모든 나라는 다른 나라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다른 나라의 정보, 특히 비밀로 분류돼 있는 고급 정보를 안다는 것은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다.

일찍이 병법가인 손자는 “적과 아군의 전력을 살펴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의 전력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의 전력도, 아군의 전력도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정보 보호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돈을 위한 것이든, 명예나 다른 이익을 위한 것이든 국가 기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비밀문건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주한 미국대사나 직원을 만나 한 이야기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기밀을 알려주려고 경쟁하는 듯하다.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국가정보를 누설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익을 얼마나 침해하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궁금하다. 기밀 누설의 결과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외교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우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대방의 패를 모르는데 상대방은 우리의 패를 훤히 알고 치는 고스톱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어린아이도 다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외교는 밀고 당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가끔씩 통하는 벼랑 끝 전술도 우리가 가진 패를 상대방이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쓸 방법을 상대방이 다 알고 있을 때 무엇으로 외교전에서 승리할 것인지 궁금하다.

국가정보 누설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국가기밀을 누설하더라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약하다. 형법은 ‘적국’을 위해 간첩행위를 한 자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우방과 적국의 구별이 분명했으나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외국에 국가의 중요 정보를 누설한 사람에게 면제부를 주는 이상한 법이 됐다. 형법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나 처리는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우리 정보는 계속 새나가고 있다. 국제사회는 모든 국가가 한편으로는 협조하고 한편으로는 경쟁하는 것이 현실이다. 적도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외국이나 외국의 단체에 우리나라의 비밀을 누설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는 것과 함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자각해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형법 개정이 늦어지는 가운데 외국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수집 활동과 산업기밀 유출 등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방첩업무기본규정’을 만들어 입법예고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형법 개정 때까지는 우선 이 규정으로 우리나라의 국익과 관계되는 외국의 정보 수집과 산업기밀 유출에 적극 대응하고 국가정보를 누설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규정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어느 나라의 공무원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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