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종석]“굿모닝, 에브리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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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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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며칠 전 자정 무렵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봤다.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와 세계 2위 라파엘 나달이 5시간 53분 동안 사투를 펼쳤다. 메이저대회 결승 사상 최장 시간이었을 만큼 5세트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종전 최장 기록보다도 59분이나 더 길었던 역사적인 마라톤 승부였다. 둘 중 누가 이겨도 챔피언으로 인정받을 만했다.

최후의 승자는 조코비치. 그는 매너와 격식을 따지는 테니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티셔츠를 찢는 세리머니까지 하며 기뻐했다. 반면 나달은 살짝 건드려도 쓰러질 듯 지친 기색으로 코트를 떠났다. 나달은 숙적 조코비치에게 최근 메이저 대회에서만 3회 연속을 비롯해 7회 연속 결승에서 분패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에서 설욕의 꿈이 깨진 그의 속이 얼마나 탔을까.

경기 후 생중계된 시상식에서 나달이 먼저 시상대에 올랐다. 현지 시간 오전 2시 즈음이었다. 다시 들러리로 전락한 그의 첫마디가 기다려졌다. “굿모닝 에브리바디(Good Morning Everybody).”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1만5000명의 관중은 그 한마디에 환호했고 기립박수가 끝날 줄 몰랐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나달은 “비록 졌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경기였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달은 눈앞의 쓰라린 현실을 위트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보였다. 자신의 다짐대로 앞으로 그의 행보에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모두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쏟아냈다. 트로피가 두 개가 아닌 게 안타깝다.” 조코비치의 위로에도 격조가 있었다.

나달을 향한 찬사는 단순한 말 한마디 때문은 아닐 것이다. 코트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뒤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을 재치 있게 드러냈다. 보는 이들은 가슴이 훈훈해지며 신선한 감동을 받을 만했다.

그런 나달을 통해 몇 가지 기억이 되살아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는 결승에서 루트비히 파이셔를 한판으로 꺾은 뒤 매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파이셔는 비록 패했지만 오히려 최민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뒤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 줬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 시상대 꼭대기에 오른 이승훈을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유럽 선수 2명이 목말을 태우듯 번쩍 들어올려 새 챔피언의 탄생을 알렸다.

한때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친 한국 선수들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인터뷰도 꺼렸다. 메달이라면 색깔 구분 없이 하늘을 날 듯 기뻐하던 외국 선수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쳐졌다. “경기장에서 죽을 각오로 뛰겠다”는 섬뜩한 출사표가 대수롭지 않게 들리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시대가 바뀌고 스포츠를 바라보는 인식과 가치관도 달라졌다. 지나친 1등 지상주의보다는 목표를 향한 과정을 중시하고 소중한 도전정신이 부각되고 있다. 바둑의 십계명인 위기십결의 첫 번째는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이기려고 욕심만 부리다 보면 얻지 못한다. 패자의 상처와 좌절도 집착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는지.

특히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고 런던 올림픽이 열리게 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탄식이 쏟아질 것이다. 후회 없이 싸운 뒤 승패를 떠나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 보자.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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