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한국인의 3대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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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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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한국의 설과 추석 명절 때마다 외국인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것은 ‘민족대이동’ 현상이다. 2000년대 들어 도시화 비율이 90%를 넘어 완성기에 이르자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는 반대였다. 2002년 2266만 명이었던 설 연휴 이동 인원은 점차 늘더니 2008년 3000만 명 선을 넘었다. 올해는 3100만 명 이상이 움직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인구 3명 중 2명꼴로 움직인 셈이다.

이는 올해 7억8900만 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중국의 춘제(春節) 이동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7억8900만 명은 중국 전체 인구 13억4000만 명의 58.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처럼 설 연휴 전후 3∼5일간의 이동 인구가 아니라 춘제 전후 40일(올해는 1월 8일∼2월 16일)간 이동한 사람 수다.

특히 외국인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귀성 및 귀경에 걸리는 시간이다. 평소 4∼5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9∼10시간 들여서도 기를 쓰고 고향에 간다. 필자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서울에서 전북 부안까지 가는 데 22시간 30분이 걸린 적도 있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양인은 이를 의아해한다.

외국인을 경탄케 하는 또 다른 것은 경로당과 마을회관이다. 서양과 똑같은 도시의 아파트엔 어김없이 경로당이 들어서 있다. 시골에 가면 동네마다 마을회관이 있다. 서양은 물론이고 같은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에만 있는 시설이다. 2006년 5만5504개였던 경로당은 2010년 6만737개로 늘었다. 전국 2000여 동(洞)과 3만5000여 리(里) 수보다 훨씬 많다.

아파트 주민이나 마을 사람들은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함께 장기나 바둑을 두고 화투를 치면서 서로의 우의를 재확인한다. 함께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경사(慶事)를 맞은 주민이 ‘한턱’ 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의 또 다른 시설은 시골의 모정(茅亭)이다. 이름도 없이 초가지붕으로 소박하게 지은 모정은 말 그대로 서민적이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양반이 오락 및 휴식 목적으로 근사하게 지은 정자와는 크게 다르다. 모정도 산업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기와지붕으로 바뀌었다. 최근엔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최첨단 모정도 생겨났다.

모정은 동네 주민의 휴식처이자 토론장이요, 정보 교환의 장소다. 특히 여름엔 논밭 일을 마치고 한낮에 더위를 피하며 쉬는 장소로 많이 쓰인다. 과거엔 품앗이를 편성하는 등 노동 교환의 장소였고, 동제(洞祭)나 동회(洞會)의 장소로도 쓰였다.

설 명절의 귀성이 친족공동체의 발현이라면 모정은 지역공동체 의식의 발로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역시 지역공동체 및 경로사상이 스며든 결과다. 그만큼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독 한국인의 평등의식이 강한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외국의 학자들은 강렬한 지역 및 친족공동체 의식과 경로사상을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를 ‘한국인만의 독특한 3대 DNA’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에 자본주의가 들어온 지 100여 년이 지났다. 건국 이후 빠른 경제성장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빈부격차의 심화 등 문제점도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인의 독특한 3대 DNA를 잘 활용한다면 ‘난제 중의 난제’인 격차 줄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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