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는 왜 ‘석궁 테러-나꼼수 공격’에 무력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판사의 힘은 엄청나지만 여론의 힘”이라고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말했다.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권력을 갖는 것은 헌법의 근거와 국민여론의 지지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형을 선고해 풀어준 판사의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판사 테러를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에는 일주일간 100만 명 가까운 관객이 몰렸다.

사법부 불신은 주로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전관예우 등 구태 관행의 지속과 일부 법관들의 정치 편향이다. 1심에서 중형을 때리면 변호사가 전관예우의 힘을 빌려 항소심에서 깎아주는 관행 덕분에 로펌은 큰돈을 벌고 재벌 회장들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은 대통령을 ‘가카의 빅엿’이나 ‘가카새키’ 같은 천박한 언사로 조롱하는가 하면 정치적 편향을 드러낸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거침없이 올린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개념 없는’ 판사들이다.

판사의 언행이나 판결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교수가 항소심에 불만이 있으면 대법원에 상고해야지 판사를 석궁으로 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범죄다. 그럼에도 영화 ‘부러진 화살’은 그를 선량한 피해자 또는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다. 후보자를 매수한 사람보다 매수된 사람에게 훨씬 엄한 형벌을 선고한 판사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집까지 찾아가 집단시위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BBK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을 의인(義人)인 양 치켜세우며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한명숙 대표에게 내려진 무죄 선고는 환영한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정 전 의원에게 유죄를 확정한 대법관을 ‘신상털기’하는 누리꾼들의 작태도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불신 풍조에 편승해 사법부를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법원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크다. 법원은 정치적 편향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판사들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낡은 관행을 청산하려는 굳은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법관의 권위는 법정의 고압적 분위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할 때라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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