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50년 전,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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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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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2년,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까지 큰 영향을 미칠 두 권의 책이 출판됐다. 하나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고, 다른 하나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이 두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을 송두리째 뒤엎었으며,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이제 상식의 일부가 되었다.

카슨은 생물학자이자 86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우리 주변의 바다’의 작가였다.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박사과정을 밟다가 학업을 그만두었다. 반면에 쿤은 물리학을 전공하던 도중에 철학에 흥미를 느꼈지만,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지 않고 과학의 역사에서 자신이 흥미를 가졌던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러한 주변적인 경력 때문에 카슨은 과학자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쿤의 저술은 전문 과학철학자들에게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새가 울지 않는 가까운 미래의 봄날을 충격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무분별하게 쓰이던 살충제 DDT를 고발한 책이다. 화학자들의 오랜 실험을 통해 개발된 DDT는 곤충을 효과적으로 죽이지만 포유류 등에는 해가 없다고 알려진 획기적인 살충제였다. DDT는 특히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살포됐다. 당시에 벌과 새의 수가 줄어드는 등 살충제의 부작용이 생태계의 파괴로 나타났지만 당국은 DDT가 다른 생명체들에게 유해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이를 방관했다.

‘침묵의 봄’‘과학혁명의…’ 논쟁 촉발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의 악영향이 새의 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또 DDT가 식품 잔류물로 발견돼 우리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미래에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맞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생물학자 카슨이 몇 년에 걸쳐 이 문제를 꼼꼼하게 연구했고, 작자 카슨이 호소력 있는 표현으로 주장의 설득력을 높였다. 카슨은 거대 화학회사와 화학자들의 원색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명예 훼손으로 고소 위협을 받았으며, 심지어 냉전의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꼭두각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침묵의 봄’은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으며,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움직여 환경운동의 거대한 물꼬를 틀었다. 1970년에 미국 정부는 환경보호국을 설립했고, 1972년 이후에는 DDT와 다른 화학 살충제를 연이어 금지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의 발전이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만드는 정상과학과 이런 정상과학이 위기를 맞으면서 다른 정상과학으로 바뀌는 급격한 과학혁명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쿤의 해석에 따르면 과학 활동의 대부분은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만드는 ‘보수적인’ 활동이었다. 무엇보다 패러다임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객관적 진리라기보다 과학자가 만든 일종의 모델 비슷한 것이었다. 게다가 쿤에 따르면 두 개의 패러다임 사이에는 합리적인 소통을 어렵게 하는 단절 비슷한 것이 항상 존재했다.

쿤의 해석에 대해서는 숱한 반론과 논쟁이 이어졌으며, 한 과학철학자는 쿤이 과학을 ‘군중심리’로 격하했다고 분노에 찬 비판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렇지만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20세기 후반기 동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고, 과학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과학은 신이 만든 자연법칙을 찾아내는 활동이 아니라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복잡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자 그 결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쿤의 책은 과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으며, 과학을 둘러싼 신비의 그림자를 걷어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20세기 후반기에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인용하는 학술서적이 되었다.

환경문제 등 활발한 후속논의 기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문제들 중 정당정치, 외교 문제나 남북관계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남는 것들은 대부분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문제들이다.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광우병 쇠고기와 구제역 논란, 줄기세포, 4대강 논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문제, 핵에너지와 대안에너지, 유전자변형식품, 환경호르몬, 다이옥신, 은나노 등등. 이런 문제들은 인간이 초래했거나 자연적으로 별로 문제가 안 되던 것을 인간이 악화시킨 것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쌍방향적인 소통과 신뢰,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 투명하고 미래 지향적인 과학기술 거버넌스 등이 필요한데, 50년 전에 출판된 두 책은 이런 원칙이 자라나는 토양의 역할을 했다. 출간 50년을 맞아 ‘침묵의 봄’과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한 활발한 후속 논의를 기대해 본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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