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형삼]神父 주문모, 선장 청다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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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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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논설위원
이형삼 논설위원
김훈의 소설 ‘흑산(黑山)’은 1801년 신유박해를 전후한 천주교 탄압을 소재로 다뤘다. 많은 교인이 잔혹한 형벌 끝에 죽어간다.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의 처형이다. 그 무렵 청나라에선 천주교가 척사(斥邪)의 대상이 아니었다. 예수회 신부들은 공개적으로 포교활동을 했고 정부 관리로 일하며 수학 천문학 등을 전수(傳授)했다. 그런 청나라가 제 발로 의금부를 찾아간 자국인 신부를 고문하고 효수(梟首)한 조선을 어찌 그냥 봐 넘겼을까.

천주교 자료를 찾아보니 ‘꼼수’가 눈에 띈다. 당시 조선 조정(朝廷)은 청나라를 의식해 주문모 신부가 제주도 태생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나중에 조선 왕은 청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신부가 죽은 뒤에야 공범의 자백으로 그의 출신지를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황제의 진노를 살까 봐 ‘경위서’와 함께 많은 양의 은(銀)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0년 후 2001년, 한국인 마약 제조범 신모 씨가 중국 하얼빈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당일 총살됐다. 중국 형법 7절 347조엔 마약을 50g 이상 제조하면 사형에 처할 수 있게 돼 있다. 한국 형법 198조는 같은 범죄를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한국 정부의 뒤늦은 항의는 빈 메아리로 돌아왔다. 지금도 5명의 한국인 마약사범이 사형 위기에 처해 있다.

2011년, 중국인 선장 청다웨이(程大偉)가 불법조업을 단속하던 한국 해경 이청호 경사를 살해했다. 청 선장은 살인죄가 적용되면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가 적용돼도 다른 해경을 상해한 죄가 추가돼 사형 선고가 가능하다. 사람을 죽게 한 죄는 어느 나라나 중형으로 다스리지만 그가 사형 선고를 받으면 중국 정부는 또 ‘문명적인 법 집행’과 ‘인도적 처우’를 들고 나올지 모르겠다.

그 나라의 특수한 역사 문화 관습을 반영한 탓에 공감하기 어려운 법률이 있다. 조선이 오가작통법(5가구를 1통으로 묶은 주민조직법)으로 연대책임을 물어 천주교의 씨를 말리려 한 것은 부모 제사를 모시지 않는 ‘불효불충(不孝不忠)의 무리’인 데다 서양 함선의 잦은 출몰에 민감해져 천주교인을 외세와 한통속으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마약범죄를 극형으로 처단하는 것은 아편전쟁으로 나라가 거덜 난 치욕의 근대사와 맥이 닿아 있다. 역사적 배경은 이해가 가지만 국제사회의 보편적 법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가 필요성을 공감해 함께 만들고 합의한 국제법과 국가 간 협약은 마땅히 준수해야 한다. 가령 한중 어업협정은 위반 어선에 대한 연안국의 승선 임검 검색 나포 재판관할권을 보장한다. 유엔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사망 또는 중상해의 급박한 위협에 처했을 때 자위(自衛)를 위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중국은 자국 어선들의 ‘급박한 위협’은 나 몰라라 하면서 한국 해경의 제한적 총기 사용 방침엔 반대하고 있다.

법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나라 간의 도리와 상식이다.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중국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중국 외교부장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재외동포영사를 사고 현장에 보내 유족들을 조문했다. 이런 게 도리다. 이청호 경사 유족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은 중국 외교는 상식이 아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는 새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공허한 수사(修辭)로 들리는 상황에서 ‘상식과 도리의 관계’라도 정착되면 좋겠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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