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대기업 뺨치는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현지 산업부 기자
김현지 산업부 기자
농심의 라면봉지를 도맡아 생산하고 동서식품의 건물관리를 전담하는 회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농심과 동서식품의 사업이 안정적이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매출 대상 기업 오너의 자녀들이 주요 주주로 있다는 점이다.

올 한 해 대기업 오너가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의 물류, 시스템통합(SI), 광고 계열사들은 계열사 매출이 전체 매출의 7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회사들의 공통점은 유독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심그룹 계열사인 율촌화학은 2010년 매출액 3426억 원 가운데 51%인 1747억 원을 농심, 태경농산, 농심기획 등 농심 계열사를 통해 벌어들였다. 율촌화학은 농심에 라면봉지나 스낵용기 등을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라면 봉지만으로 올해 3분기(1∼9월)까지 36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몇 년간의 불황 속에서도 매년 200억 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는 ‘알짜기업’으로 통한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차남 동윤 씨가 율촌화학의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3대 주주다.

규모는 작지만 김상헌 동서 회장의 장남 김종희 동서 상무가 최대주주인 성제개발도 지난해 매출액 136억 원 가운데 124억 원을 동서식품, 동서물산, 동서유지 등 계열사를 통해 벌었다. 성제개발은 건물 보수나 임대 등을 하는 회사로 매출액의 90% 이상을 친인척 회사에 의지한다.

이 같은 거래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버는 모습은 중소기업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공정한 룰에 바탕을 둔 경쟁을 통해 산업 내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27일 일부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증여 행위로 보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과세 대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오너 일가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물건 값을 시장가와 다르게 해 부당이익을 챙기게 했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에도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공존’이 화두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들의 경영 행태도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현지 산업부 nu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