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며/김윤숭]지리산 자락에서 둥굴레차를 마시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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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숭 수필가·지리산문학관장
김윤숭 수필가·지리산문학관장
단풍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지리산이 이제 낙엽이 지고 쓸쓸한 겨울철로 접어들었다. 지리산문학관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지리산 가는 길에 있는데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에 둘러싸여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고향의 안온함과 훈훈함을 항상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므로, 지리산 하면 어머니 같은 모친산이라 초겨울일망정 쌀쌀함보다도 가슴에 전해오는 훈기를 절로 느낀다.

관장실에 앉아 한기를 떨기 위해 둥굴레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의 산과 호수는 은막의 스타가 될 차림으로 아련한 기운이 감돈다. 속세에서 벗어난 듯 청아한 곳에서 은은한 둥굴레차 향을 맡으며 차를 마신다. 뜨거운 둥굴레차가 담겨 있는, 우리 고장 출신 김석규 시인의 ‘잘 구운 돌’이 새겨진 찻잔을 보며 시를 음미한다.

‘문득 겨울 아침의 어머니 생각으로/잘 구운 돌은 바로 황금알이었지/빈주먹 쥐었다 폈다 하며 혼자 웃는다.’ 시인의 어머니가 아침마다 손 시린 아들을 위해 돌을 구워 쥐여주며 따뜻함을 지닌 채 학교 가도록 해주었단다. 이 시를 읽으니 쌀쌀한 날씨에 쓸쓸히 혼자 누워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지리산 가는 길로 가면 내가 태어난 살구징이 동네가 있고 거기서 어머니는 살다 떠나셨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그곳이 오도재다. 고려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도를 깨달은 고개라서 오도재라고 하는데, 정상에 지리산제일문이 웅장하게 서 있고 멀리 함양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넘으면 천왕봉을 바라보기 좋은 지리산조망공원, 함양의 명현 정일두와 김탁영의 지리산 유람기 속두류록의 베이스캠프 등구사, 한국의 3대 계곡인 칠선계곡의 선경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지리산 구경의 제2경 벽송사 및 서암정사가 초겨울 정취 속에 고색창연하다. 벽송사는 조선 선불교의 발상지이고 서암정사는 경남의 석굴암으로 금니사경전시관도 있어 관광객이 많아졌다. 함양의 지리산에는 칠선계곡과 백무동계곡이 아름답다. 이 계곡을 통해 천왕봉까지 오를 수 있다.

천왕봉과 노고단이 있으니 천왕은 지리산 남편이고 노고는 지리산 아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천왕은 불교의 수호신 사대천왕이고 노고는 도교의 여신이니 도불의 결합을 상징한다. 지리산은 불교 성지일 뿐만 아니라 도교 신선의 고장이기도 하다. 도교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서화담이 지리산에서 신선을 만난 설화도 전해진다. 신라시대 지리산에서 캐간 함양 산삼은 최고운이 당나라에 있을 때 조정 고관들에게 선물한 것으로 서복의 불로초로 불린다.

어슴푸레한 지리산의 초겨울 이내가 내려앉은 관장실에 앉아 찻잔을 들고 뜨거운 둥굴레차의 향미를 즐기며 ‘고전문학함양’을 뒤적인다. 지역 청소년들이 어릴 적부터 고장의 고전문학을 읽어 감성을 함양하도록 권장하는 시책으로 연 함양고전문학독서경시대회 자료집이다. 최고운 정일두 김탁영 서화담의 훈풍 같은 정신을 어디서 느낄까. 고전문학에서일 것이다. 시국이 을씨년스럽고 산천이 을씨년스러워도 가슴이 훈훈한 지리산의 문학행사를 반추하니 오늘 따라 둥굴레차가 더욱 구수하고 맛있다.

김윤숭 수필가·지리산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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