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준양]과학기술 2.0 시대를 여는 출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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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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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양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정준양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1962년 1월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었던 때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당장 입에 넣을 수 있는 식량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세 가지를 부탁했다. 이민 허용, 국방 현대화, 과학기술이었다. 이민은 후에 인재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고, 국방 현대화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바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과 수출 드라이브의 밑거름이 됐다.

1966년 종합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은 바로 그 상징이었다. 밖에서는 우리나라를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국가라고 평가한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어려운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선진국 추격을 넘어 이제는 선진국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만의 독자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선도형, 창조형 과학기술의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소속 기초기술연구회와 지식경제부 소속 산업기술연구회로 양분돼 운영되던 27개 과학기술 관련 국가 출연연구소의 개편방안을 내놨다. 일부 연구소는 부처에 남기고 KIST, 기계연구원, 화학연구원 등 19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가연구개발원(가칭)이란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융합시대에 대응하려면 출연연구소 간의 칸막이를 제거해 흩어져 있는 연구 자원과 역량을 임계 규모 이상으로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는 출연연구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새로운 이사회 체제와 평가제도, 국가연구개발원 원장에 대한 대통령 임명권, 외부 전문가 평가단 운영 등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대로만 된다면 지금의 연구 환경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당장 일각에서는 정권 말기에 과연 출연연구소 체제 정비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체제 개편이 현실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결국 또 한 번의 시대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우선 국회에서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치권은 미국이 과학기술만큼은 초당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결단을 해야 한다. 부처나 연구소들도 개별적 이해관계를 떨쳐내야 할 때다. 이번 개편은 결코 정부 주도가 아니다. 2009년 11월 당시 윤종용 공학한림원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가 만든 안이 그 골격이 된 만큼 부처는 물론이고 과학계, 공학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연구소 체제 정비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소프트웨어 등 제반 환경과 문화를 선진화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다. 출연연구소 개혁을 계기로 그동안 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공립연구소들, 그리고 대학의 연구를 선진화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지금의 금융 불안이 전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몰아넣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기술혁명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50년의 장기적 경기 사이클인 콘드라티예프 주기설로 볼 때 산업혁명이 제1파라면 지금은 제5파인 정보기술혁명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사이클의 후반부에는 늘 그 다음 사이클(제6파)의 시작이 될 기술혁명이 꿈틀거린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먼저 준비하는 국가가 항상 그 다음 사이클의 산업패권을 쥐어왔다. 무역 2조 달러, 국민소득 4만 달러를 향한 새로운 과학기술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기술이 산업과 경제를 선도하는 우리 고유의 국가 발전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다.

정준양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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