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태경]김정일 사망 관련 국정원 비판 제대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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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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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국가정보원이 난타를 당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북한 공식 발표 전에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국정원을 쇄신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쇄신을 잘하려면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비판이 나와야 한다. 무분별한 비판은 쇄신의 방향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최근 국정원 비판 중 각을 제대로 못 잡은 비판 하나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정보가 아닌 ‘북한의 도발을 몰랐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나오는 비난이다.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가정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김정일 사망과 ‘북한의 도발’ 관련 정보는 수집 과정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김정일 사망 소식 등 사람과 관련된 것은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정보가 큰 축을 차지하지만 북한 군대의 이동 등은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하는 ‘시진트(Signal Intelligence)’에 주로 의존한다.

김정일 사망 소식이 발표된 19일 오전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우리 정부가 알고 있었듯 북한의 군사 동향은 제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대북 군사정보 수집 능력은 향상되고 있는 것 같다. 국정원 비판은 하더라도 국민에게 불필요한 우려까지 줄 필요는 없다.

세계 최고 정보력과 최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 역시 김정일 사망과 관련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중국 역시 김정일의 죽음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중국 대북 외교의 핵심 책임자인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19일 오전 미얀마에 갔고 원자바오 총리는 18, 19일 장쑤(江蘇) 성으로 향했다고 한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도 북한에서 소식을 전달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김정일의 사망 첩보를 보고 받고도 묵살했다’는 야당 국회의원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 북한 내부정보를 취득해 기사를 내는 열린북한방송의 대표로서 겪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100% 확실한 정보를 한 번에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첩보를 획득하더라도 크로스 체크를 거쳐 확신이 생겼을 때에야 기사를 낼 수 있다. 김정일의 사망과 관련한 첩보가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100% 확실하지 않은 첩보의 내용을 청와대가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다. 그것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사후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

국정원의 문제를 야기한 것은 국정원 내부뿐 아니라 정치권이었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로 ‘휴민트’ 붕괴를 꼽는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추진 이후 인적 정보망이 와해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빨리 복구하는 것이 큰 과제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인사들을 물갈이했던 관행도 문제다. 차기 정부에 줄을 잘 서기만 하면 국정원의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 전문가들을 키울 수 없었다. 국정원이 정권이 아닌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치적인 이유의 인사(人事)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국정원 역시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간첩을 보낼 때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무함마드 깐수(본명 정수일) 간첩사건’에서 볼 수 있듯 북한은 정 씨를 해외에서 12년을 지내게 하면서 국적을 세탁시키고 한국에 침투시켰다. 물론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국정원이 독립성을 가지고 정권이 아닌 국가에 충성해야 할 것이다.

한편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와는 달리 한국에서 큰 혼란이 생기지 않은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이는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보고를 바탕으로 현 정부가 김정일의 사망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부분은 국정원 등이 잘했기 때문이며 여기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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