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략적 협력 동반자’ 韓中 정상 간의 不通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사(急死)한 뒤 이명박 대통령은 주변 4강(强) 중 미국 일본 러시아 정상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지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핫라인’은 작동하지 않았다. 김정일 사망으로 초래된 북한의 권력 공백은 자칫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중대 사안이다. 북한의 공식 발표 하루 뒤 양국 외교장관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는 하지만 한중(韓中) 외교채널이 정상 가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중 정상은 2008년 5월 회담에서 양국관계가 ‘전면적 협력 동반자’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됐다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만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했던 중국이 한국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면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중국의 주요 외교채널은 김정일 사망이 알려진 당일 아예 전화기를 꺼놓고 한국의 접촉 시도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도 무책임한 태도다.

중국은 북한과 혈맹(血盟) 관계라고 하지만 한국과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후 주석은 미국 일본 러시아 정상과도 통화하지 않았지만 한국은 남북문제 당사자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후 주석은 시진핑 부주석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 등 지도부를 대동하고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김정일을 조문(弔問)하는 예를 갖추면서 한국은 무시했다.

중국이 필요할 때만 외교채널을 가동하겠다는 식의 행태를 드러낸 것은 유감이다.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무력충돌 위기가 고조되자 외교적 절차를 무시한 채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방한을 긴급 통보했다. 이 대통령이 ‘현 시점 6자회담 불가’를 분명히 했지만 중국은 베이징에서 일방적인 6자 회동을 제안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다.

우리 정부도 ‘중국은 북한과 관련한 긴급 사안이 발생하면 연락이 잘 안되는 나라’라는 식으로 핑계만 댈 일이 아니다. 외교 핫라인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작동하기 위해 만들어 놓는 비상수단이다. 정작 필요할 때 불통(不通)이 돼서는 곤란하다. 대미(對美) 외교 의존도가 높아 중국을 움직일 충분한 지렛대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중국과 명실상부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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