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나 정당 차원의 조문도 부적절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조문단(弔問團)을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생전의 공과(功過)야 어떻든 한반도 북쪽을 37년 동안 통치한 망자(亡者)에 대해 최소한의 예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김정일이 생전에 저지른 반(反)인륜적 범죄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버마(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KAL 858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을 조종한 그는 대량 살상 테러범죄와 납치범죄의 최고 지휘자다. 천안함 희생 병사 46명과 연평도 포격에 희생된 주민과 군인들의 원혼도 김정일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화 혁명에 저항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비참하게 죽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를 조문하자는 말이 문명국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김정일은 어찌 보면 카다피보다 10배, 100배 악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독재자다.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은 김대중(DJ)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조문을 금기시하던 곳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에 간 DJ나 2007년 2차 회담에 나선 노 전 대통령도 국민 정서를 고려해 이곳을 찾지 않았다. 정부 차원이 아닌 국회나 정당 차원의 조문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정부 일각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나 정당 대표가 김정일의 시신이 놓인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머리라도 조아린다면 북한은 ‘남한 정부와 주민이 김정일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고 선전할 것이다.

다만 DJ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처럼 과거 북한의 조문에 대한 답례 차원의 개인적 방북은 선별해서 신중하게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당사자들은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는 것이 옳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시 조문 파동의 장본인인 이부영 씨는 한 일간지 기고에서 “조문 외교는 죽은 자에 대한 인간의 예의와는 다른 수준”이라며 “도덕적 판단과 정책적 대응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사망의 경우 조문 외교와 ‘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3대 세습은 문명국의 수치지만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북한의 실권자로 부각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의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동족을 학살하고 북한을 생지옥으로 만든 김정일에 대한 조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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