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선냄비에 1억 수표 넣고 간 ‘그 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8일 03시 00분


초로(初老)의 신사가 4일 서울 명동의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1000만 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넣고 사라졌다. 구세군의 거리 모금이 시작된 1928년 이래 1억 원이 넘는 기부는 처음이다. 봉투 안엔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라는 짤막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과소비로 해외 명품업체의 ‘봉’ 노릇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 검사 변호사 판사의 얽히고설킨 금품 로비 의혹에 등장하는 540만 원짜리 샤넬 핸드백…. 연일 쏟아지는 어두운 뉴스 속에서 한 줄기 환한 빛처럼 희망을 안겨준 소식이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올겨울에는 폭설과 한파가 잦을 것이라고 한다. 난방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겨울은 힘들고 을씨년스러운 계절이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빚을 떠안은 가장, 새벽 인력시장에서 언 발을 구르다 돌아서는 일용노동자, 쪽방에서 힘겹게 찬밥 한 술을 뜨는 홀몸노인, 보살핌을 받을 나이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소년소녀가장….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우리 이웃이 적지 않다.

불황이 깊어져 딱한 이들을 보듬는 손길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010년 모금액 중 기업 기부금은 2009년보다 약 60억 원 늘었지만 개인 기부금은 100억 원 정도 줄었다.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세대도 늘어나고 있다. 가계의 실질소득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수출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주머니 사정이 뻔한 개인들이 어려운 이웃에게 선뜻 온정을 베풀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경기에 허덕이는 미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기부금 규모가 2.2%로 우리(0.9%)의 2.5배 수준이다. 전체 기부금 가운데 개인 기부금 비중이 우리는 60%대인데 미국은 80%에 육박한다.

많이 번 사람은 좀 많이, 적게 가진 사람은 형편에 맞게 서로 돕고 사는 사회라야 희망이 있다. 승자가 시장의 파이를 독식(獨食)하고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관심하면 자본주의도 건강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자선냄비에 수표를 넣고 간 노신사, 짜장면을 배달해 월 70만 원을 벌면서 아이들을 후원한 고(故) 김우수 씨 같은 이들은 우리 사회의 연대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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