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재정 개선 포기하고 포퓰리즘 앞장서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가가 0∼5세 아이들에 대한 보육을 반드시 책임진다는 자세로 예산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바람에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해 놓은 예산안을 수정했다. 당초 5세 아동의 보육비는 소득과 관계없이 전액 지급하고 0∼4세 아동은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하기로 했으나 전 계층에 전액 지급하는 것으로 고쳤다. 추가로 들어가는 세금은 5000억 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청년취업 창업 등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3조 원가량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숫자 두 개 고치면 1조 원’이라는 예산 당국자의 말이 실감 난다. 재정 형편을 감안하지 않은 복지경쟁에서 여야의 구별이 없다. 한국의 복지 지출이 선진국보다 적다는 이유로 총액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복지에 큰돈이 소요되리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논의다. 일부 좌파 진영에서는 최근 ‘증세(增稅) 없는 복지 확충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부자 증세’로 몰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청와대는 복지 예산을 늘리되 예산 총액을 유지할 방침이다. 그러자면 다른 예산을 깎아야 하는데 감액 충격이 적은 곳을 고르다 보면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을 손대기 십상이다. 성장력은 깎아먹고 복지 부담은 후세에 넘겨주는 꼴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대로라면 지켜질지 의문이다. 임기 말 ‘퍼주기 복지’를 중단하고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을 막아내야 균형재정을 지킬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면서 성장과 고용확충 위주의 경제노선인 ‘MB노믹스’를 폐기하더니 임기 말 여야의 공세에 휘둘려 복지 포퓰리즘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이라고 남유럽 같은 재정위기가 비켜가란 법이 없다. 이 대통령이 ‘복지 재앙’을 부른 대통령으로 평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단단한 각오가 요구된다.

복지 재원과 함께 우리에게 적합한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지난주 서울대 경제연구소 정책토론회에서 “최근 선진국들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 국민의 경제활동 참가 지원,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등을 추구하는 복지개혁에 나섰다”며 “우리도 현금 지급보다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사회서비스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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