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승재]‘일감 몰아주기’ 과세 논의 신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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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승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포정해우(포丁解牛)라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의 살과 뼈를 발라낼 때 무리하게 일하지 않으면서 칼이 상하게 하지 않고 일도 부드럽게 이루어져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기업이 전산, 물류, 소모성 자재 구매 등을 담당하는 비상장회사를 설립하고 여기에 일감을 몰아줘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게 비판의 요체다. 이런 현상을 문제로 인식할 때 정부는 규제를 생각한다. 이때 규제를 하는 정부는 포정해우 고사와 같이 이치에 부합하도록 규제해야지, 무리하게 목전의 목적만 바라보고 즉흥적인 대응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칼도 상하고 고기도 결에 따라 발라내기 어렵다.

경제주체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다소 뭉툭하고 일률적이며 예외 없는 규제 수단을 사용하는 게 규제 비용과 효과 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경제는 복잡해졌고 규모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현상을 규율할 때는 섬세한 규제가 필요하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수단을 사용해 경제에 최소한의 부담만 주고 원하는 결과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책은 일감 몰아주기로 분류되는 행위들이 갖는 효율성 증대의 면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기업들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업(MRO)을 하는 회사를 두고 구매를 전담하게 하는 것은 기업집단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경제학은 독점적 상류기업과 경쟁적인 하류기업의 통합 혹은 통합과 유사한 효과를 야기하는 수직적 제약을 통한 하류시장의 봉쇄도 경쟁 제한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입증했다. 구매를 집중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으므로 대기업집단 내 개별 자회사들이 각각 구매할 때보다 협상력이 커져 구매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구매 담당 조직의 효율화도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구매조직의 통합은 생산적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논의되는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나 소득세법과 같은 세법, 대중소기업상생법상의 사업조정제도 같은 중소기업 관련 법령을 활용할 때는 제도 설계의 효율성 증대 효과를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개별 회사가 가진 속성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제안한 대로 일감 몰아주기를 세법으로 규제하는 경우 이런 효율성 증대 효과를 고려할 방법이 없다. 세법은 과세 요건과 대상을 정하고 그 요건과 대상에 해당되면 과세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법을 활용할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든 소득세법이든 법인세법이든, 과세의 대상을 주식가치 증가분으로 하든 영업이익 증가분으로 하든 시장거래 질서를 왜곡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법에 따른 제재는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분을 과세 대상으로 하는 것은 기존 세법 체계와의 정합성에도 의문이 있을 뿐 아니라 위헌성도 있다.

최승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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