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老兵의 아시아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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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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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며칠 전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식 명칭은 ‘APEC 경제지도자회의’다. 각국 정상만이 아닌, 홍콩과 대만의 각료급도 참석하기 때문이다. APEC 회원도 국가(country)가 아닌 경제체(economy)다. 느슨한 포럼 형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토크숍(말잔치)’에 그친다거나 폐막 때 주최지 전통의상을 입은 정상들의 단체사진 말고는 특별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요코하마 정상회의부터 전통의상 단체사진이 사라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년 전 하와이 개최가 결정됐을 때만 해도 “꽃무늬셔츠(알로하) 차림을 기대한다”고 농담을 했지만 이번에 “그 전통을 깨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장 차림으로 사진을 찍은 것은 내실 있는 회의로 만들겠다는 제스처인 셈이다.

이런 의지를 보여주듯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회의 내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팽팽하게 대립했다. 폐막 회견에서도 “(중국에) 이젠 질렸다”고 비판했다. 중국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대해 “우린 초대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주말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다. 2005년 출범 때 아세안 10국과 한중일 3국(아세안+3),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했던 EAS는 올해부터 미국 러시아까지 확대됐다. 중국은 줄곧 미국의 참여를 막았지만 일본, 인도의 지원 아래 미국도 참여하게 됐다. 하와이에 이어 발리에서도 미-중의 대결 2라운드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제회의에서 미-중의 신경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경제 분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군비증강과 인권문제까지 거론하며 중국을 견제해왔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 철군과 함께 전략적 우선순위를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면서 대결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포린폴리시 11월호에 실은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미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닌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바로 중심에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곧 미군의 호주 주둔 합의, 필리핀과의 해상훈련 등 액션에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에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미국이) ‘돌아왔다(回來了)’는데, 대체 뭘 한다는 것이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44년 필리핀 재탈환을 위한 상륙작전 직후 “나는 돌아왔다(I have returned)”고 선언한 연설에 빗대어 “미국은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는데 왜 돌아온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맥아더가 누구인가. 그는 6·25전쟁 때 만주 폭격을 주장하고 대만 국민당 군대를 끌어들여 중국 본토 상륙작전을 모색했던, 중국인에겐 악몽 같은 인물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대해 먼 과거의 맥아더를 들먹이는 것은 중국의 반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준다.

사실 ‘G2 시대’에 미-중 갈등은 필연적일 수 있다. 학자들은 쇠퇴하는 패권국과 급성장하는 도전국 간의 패권전쟁 가능성까지 경고한다. 미-중 대결은 한국 외교에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의 국제외교전에서 보듯 북한은 이런 미-중 갈등의 틈새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축을 유지 강화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균형 있게 발전시킬지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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