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경제위기 새 뇌관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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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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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올리나’라는 예명이 더 귀에 익은 이탈리아 출신 전직 포르노 여배우 일로너 슈탈레르는 1987년부터 5년간 급진당 소속 하원의원을 지냈다. 슈탈레르는 금배지를 한 번 단 덕분에 만 60세가 된 이달부터 매년 3만9000유로(약 6006만 원)의 연금을 평생 받게 됐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에게 들어가는 예산규모는 연간 13억 유로(약 2조 원)에 이른다. 이 나라 정부와 정치권이 나랏돈을 얼마나 펑펑 쓰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로마제국의 후예로 자부하는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져 글로벌 경제위기의 새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초(超)위험수위인 연 7%를 넘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국채금리 7% 돌파 후 얼마 안 돼 외부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7개국 중 독일 프랑스에 이어 3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쇼크로 그제 유럽과 미국, 어제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주가가 모두 폭락했다.

▷역대 정권의 퍼주기식 정책에 따른 재정 악화,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정치리더십 혼란이 이탈리아의 추락을 불렀다. 국가채무 규모는 1조9000억 유로(약 2926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18%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아니라 ‘구제하기엔 너무 큰 대마(Too big to bail out)’라는 말도 나온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0.6%와 0.3%에 불과하다. 재정건전화와 성장률 제고, 정치 불안 해소 없는 외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경제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5%로 이탈리아의 3분의 1도 안 된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올해 많은 나라 국가신용등급을 내리면서도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올린 결정적 원인도 재정건전성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경제체력을 과신하는 것 못지않게 실제 이상으로 깎아내리는 것도 금물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여러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실패를 닮아가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걱정스럽다. 어느 나라든 의미 있는 성취를 만들기는 힘들지만 방향을 한번 잘못 잡으면 단기간에 무너질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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