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민 위한다며 서민 더 불안케 하는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서민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 오히려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좀 더 많은 약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의욕이 앞서 성급하게 정책을 시행하려다 보면 부작용을 간과하기 쉽다. 부작용을 예상하면서도 당장의 정치적 공세를 모면하거나 생색내기를 위해 설익은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정치권이 지향하는 이념에 집착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남발하는 일도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아파트 경비원에게 시간당 4580원의 최저임금 100% 적용을 의무화했으나 정작 경비원들은 이 제도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비원에게 최저임금 100%를 지급하려면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경비원을 줄이고 무인경비시스템을 설치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고 있다. 정부는 2007년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경비·감시직 근로자의 상당수가 고령자임을 감안해 최저임금 100% 적용을 5년간 유예했다. 정부는 유예 기간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부작용을 키운 정책도 적지 않다. 2009년 개정된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근속하면 기업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도록 했다. 그러자 정규직 증가를 꺼린 기업들이 계약기간을 2년 미만으로 하면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한 회사에서 6개월을 못 버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고통분담 없이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정부는 전세난 해소를 위해 주택 전·월세 계약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1989년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세 임대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집 주인들이 2년 치 보증금을 미리 올려 받아 전세금이 폭등했던 전례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선의와 명분만으로는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서민 고통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경제원리와 시장논리에 입각한 치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공무원들이 현장을 관찰하고 서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서민을 위한 입법 목적이 빛을 본다. 정책을 시행한 이후 정착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며 정교하게 수리해 가는 ‘애프터서비스’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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