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은 성난 민심 뿌리까지 알고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9일 03시 00분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사퇴 논란으로 여권 내부가 어수선하다. 임 실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권 내부에선 향후 정치적 입지를 노린 치열한 파워게임이 벌어졌다. 837만 서울시 유권자가 보낸 준열한 경고를 벌써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어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도 한숨만 쏟아졌다.

임 실장의 유임으로 결론이 났지만 후임자로 거론됐던 면면도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다. 이 대통령의 인재풀이 ‘좁은 우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최근 정부 기관 인사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기 후반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변명은 통하기 어렵다. 임기 초반 ‘고소영’ 내각으로 시작한 제 식구 챙기기 인사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만 민심 수습이 가능하다.

비정규직 근로자 600만 명 시대를 맞았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34.2% 수준이다. 대졸 이상 학력의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29.5%)보다 1.5%포인트 늘어난 31%다. 중산층 비중도 1990년대에 100가구 중 75가구 정도였으나 최근에 66가구로 줄어들었다. 그 대신 빈곤층은 작년에 처음 300만 가구를 넘어섰다. 요즘 20∼40대의 마음은 지쳐 있고 미래는 답답하다. 이들의 실망과 분노가 표심(票心)으로 분출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샐러리맨 성공신화로 변화와 경제 살리기라는 시대정신을 움켜쥐었다. 2007년 대선에서 20∼40대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결정적 동인(動因)이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성공시대’를 선포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성과물은 거의 없었다. 요즘 20∼40대 사이에서 ‘이구백(20대 90%는 백수)’ ‘메뚜기 인턴(취업을 못 하고 인턴으로만 옮겨 다니는 신세)’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같은 자조적인 유행어가 나도는 것을 이 정권 사람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내곡동 사저 사건은 이 정권에 대한 신뢰를 허물었다. 젊은 명퇴자와 대졸 백수들은 권력의 낙하산 인사에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청와대 여당 가릴 것 없이 민생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권 인사들의 깔끔한 얼굴과 맵시 있는 옷차림까지도 민초들에게 ‘그래,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이반(離反)심리를 키웠다. 물 타기 수습책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의 인사로는 민심을 수습할 수 없다. 이 대통령 스스로 분노하는 민심의 뿌리를 파악하는 것이 정국 수습의 출발점이다.

야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일제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에 나선 것은 선거 민심을 잘못 읽은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높은 한미 FTA는 이번 선거의 심판 대상이 아니다. 여권은 한미 FTA에 대해선 흔들림 없이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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