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독재 청산이 역사의 필연이요 進步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42년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고 역사의 장(場)으로 사라졌다. 카다피는 지난 8개월 동안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발버둥쳤으나 성난 민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카다피의 몰락은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한다’는 역사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한 재스민 혁명은 철옹성 같던 벤 알리의 23년 독재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장기 집권과 카다피의 독재도 끝장냈다. 시리아에서는 3월부터 하페즈 알아사드와 바샤르 알아사드 부자(父子) 대통령의 41년 장기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33년 집권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도 계속되는 시위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북한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혁명의 태풍을 영원히 피해갈 수는 없다. 2대에 걸쳐 60년 이상 독재를 자행하면서 3대 세습의 레일을 깔고 있는 김정일의 불안감이 클 것이다. 독재자들의 허장성세는 민중의 봉기라는 해일을 만나면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휩쓸려 가버린다.

리비아 해방은 무고한 시민의 학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결의와 연대가 큰 역할을 했다. 유엔은 ‘시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이라는 개념에 따라 리비아 사태에 개입함으로써 반인륜 범죄를 응징하는 소중한 선례(先例)를 남겼다. 시민보호책임은 어떤 나라에서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비인도적 범죄가 발생했을 때 시민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유엔의 결의와 이에 근거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 국민을 도와 민주화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리비아는 민주주의 경험이 없어 140여 개에 이르는 종족과 지역의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내전으로 파괴된 유전 등 산업시설을 복구하고 무기 회수와 25만 명의 난민(難民)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도 리비아 재건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카다피 같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요, 진보(進步)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라는 이념이 혼돈에 빠져 있다. 진보를 자칭하는 종북(從北) 좌파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혜택을 한껏 누리면서도 카다피와 김정일 같은 독재자들을 찬양하는 패륜(悖倫)을 서슴지 않는다. 어느 고명한 시인은 언론에 노골적으로 카다피를 미화하는 글을 썼다. 그는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북한만 그런 게 아니라 서울의 달동네도 마찬가지”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한 종교단체는 카다피에게 “자유 정의 평등의 대의를 지원하기 위해 수행해 오신 선구자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라며 인권상을 주었다.

자국민을 탄압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을 방치하거나 비호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땅도 넓고 부존자원도 많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보다 잘살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김정일은 수백만 명의 주민을 굶겨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직도 상당수 주민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고 15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북한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 군도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제 살길만을 찾으려고 핵 개발을 비롯한 군비 증강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카다피를 비롯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어느 독재자들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자국민을 억압하고 있는 최악의 독재자가 바로 김정일이다.

북한에 카다피의 최후를 알려야

북한은 카다피의 최후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6년 12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사형집행을 받았을 때도 18일이 지난 뒤에야 간단히 그 사실만 보도했다. 김정일 정권이 두려워하는 바는 주민들이 바깥세상의 흐름에 눈을 뜨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북한에는 외부의 소식을 내부로 전파하거나 내부의 소식을 외부로 알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이 카다피의 42년 독재와 처참한 말로를 알 수 있도록 우리는 단파 라디오 방송을 쏘고 풍선으로 전단을 날려야 한다. 북한 주민 스스로 폭압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도록 자극하고 용기를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민주화를 돕는 것이 진정한 진보이자 우리 세대에 부과된 막중한 사명이다. 김정일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역사의 필연인 독재 청산의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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