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소연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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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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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첫 우주인’ 만들어준 가족같은 선후배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이라는 글을 쓰려고 보니 무엇보다 매일 새벽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주 어릴 적 “우리 강아지가 박사네∼” 하시며 오늘의 나를 예견하신 외할머니, 갖은 구박과 놀림을 가장한 애정 표현으로 끊임없이 나를 성장시키는 동생들, 역시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외에도 나에겐 또 다른 가족이 있다. 기숙사 경력 17년 동안 작은 고등학교 기숙사 방에서부터 대학 때까지 몇 년을 동고동락한 룸메이트들, 강의가 없을 때면 쪼르르 달려와 내 방에서 살다시피 한 후배들, 그리고 매일 점심 저녁에 야식까지 세 끼를 함께하며 밤을 지새웠던 대학원 실험실 선후배들, 이들 모두가 내겐 또 하나의 가족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고교 시절 깐깐한 모범생이었던 S와는 룸메이트가 됐지만 절대로 ‘절친’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학에서도, 대학원에서도 룸메이트가 돼 함께 생활하고 어느 샌가 너무나도 다른 점이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었다. 덜렁거리고 건망증이 심한 나를 엄마처럼 꼼꼼한 성격의 S가 잘 챙겨주는 반면 운동을 싫어해 함께 조깅을 나갔다가 히치하이킹을 할 정도인 S가 어려워하는 일들은 건강한 내가 도왔다. 연예인이나 연애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서부터 석·박사 과정 동안 연구와 실험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우리는 모든 걸 마주앉아 내려놓고 함께 해결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감과 희망의 샘이었다.

그렇게 힘들다면 힘든 대학원 생활을 함께하던 중 나는 우주인 선발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고, S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무모한 내 도전에 든든한 응원단장이 돼주었다. 2007년 크리스마스 밤 최종 후보 2명에 선정되고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가족이었던 한 후배는 바로 내게 전화를 했다. “언니∼ 이제 인터뷰할 텐데, 어떻게 우주인으로 선발됐냐는 질문에 ‘뭐, 운이 좋았어요’ 이러면… 그거 제일 재수 없는 대답이거든”이라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우주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한 노력은 아니더라도 그간 아침저녁으로 운동한 것들과 나의 대학원 생활 전반이 다 우주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라며 답을 알려주었다. 물론 당시엔 핀잔 같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니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본 가족의 찬사였다.

대학원 실험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러시아에서 박사 과정 논문을 마무리하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연구와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실험실의 한 후배는 공산품을 구하기 힘든 러시아 우주인 훈련소로 부엌칼 가는 기구부터 갖은 양념까지 필요한 많은 것을 곱게 싼 박스에 응원의 편지까지 써 부쳐주기도 하고, 한 선배는 발사 날이 가까워지자 내 블로그에 ‘다 필요 없고 너만 건강하게 다녀와라’는 가족 같은 글로 응원해 주었다. 힘이 좋은 내가 우주정거장의 뭔가를 망가뜨릴까 걱정이라는 농담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있기에 항상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큰 실수라도 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를 일일이 일러줄 무서운 선생님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도 내가 비행을 하기로 결정됐을 때 나는 가장 먼저 그들에게 전화를 했고 “혹시 내가 한국 최초 우주인이 돼서 예전과 달라지면 바로 머리채를 붙들어서라도 정신 차리게 혼내 줘”라는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걱정 마! 그런 건 네가 부탁 안 해도 우리가 얼마든지 알아서 할 테니까”라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그런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소연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뭐랄까, 우리 몸의 건강을 항상 지켜주는 면역체계 같은, 나를 항상 지켜보고 올바르게 보호해 주는 내 인생의 면역체계로 지금의 내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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