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저 소동 같은 실패가 레임덕 자초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私邸) 입주 계획을 백지화하고 퇴임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저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고, 원점에서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올바른 선택이다. 김인종 대통령경호처장은 사저 문제 처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저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깨끗이 매듭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곡동 사저 문제는 왜 아들 시형 씨가 용지 매입자로 등장했는지, 그리고 국가예산이 시형 씨 개인 명의 땅값으로 흘러들었는가가 핵심이다. 청와대 측은 사저 백지화에 대해 “사저 매입 과정에서 실수나 오해가 있어서이지 비리가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의 시각은 청와대와 다르다. 뭔가 명쾌하지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현직 대통령과 가족이 작은 재산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리를 저질렀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실수나 오해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 해도 이 대통령이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이 가감없이 그 과정을 해명하고 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것이 순리다.

이 대통령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그는 “내 임기 중에 게이트나 레임덕은 없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레임덕은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도덕성을 정권의 버팀목으로 삼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레임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자기 다짐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고 있는 측근 인사들의 비리 연루에다 사저를 둘러싼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됐다. 대통령의 도덕성이 걸린 사저 문제와 같은 소동이 반복된다면 국민 불신은 고조되고 레임덕을 자초하게 된다.

이 대통령은 3년 8개월의 재임 기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고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도 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개인적인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공적이 많더라도 빛이 바래기 십상이다. 사저 문제는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일이다. 정무적 판단력이 떨어지는 등 청와대 참모진의 무능이 다시 드러났다. 이 대통령이 진정 레임덕을 피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과 주변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국민이 공정하다고 인정하지 못할 일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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