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내 맘대로 언론’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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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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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하루아침에 한국 정치판을 뒤흔든 ‘안철수 태풍’. 그 바람을 타고 단숨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날아오른 박원순의 드라마는 정당정치의 비상벨만 울린 게 아니다. 기존 언론의 정치 취재 관행에도 경종을 때렸다.

오랫동안 정치부의 취재 시스템은 정당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하지만 ‘장외강자’들이 정당정치의 주춧돌을 흔들면서 언론사 정치부의 취재 시스템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익숙한 정치부 기자들에겐 위기감마저 들게 했다. 정치부를 책임진 나로서도 취재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안풍’은 정치 취재시스템에도 경종

그런데 이들 ‘장외정치인’은 홀로 등장하지 않았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장외언론’과 함께 나타났다. ‘장외’라는 수식어가 달렸지만 트위터에 ‘언론’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낄 언론인 동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이 세계 최고로 발달해서든, SNS가 한국인의 ‘빨리빨리’ 체질에 맞아서든, 한국인의 정치 참여도가 워낙 높아서든, 여론의 ‘쏠림’ 현상이 강한 국민정서에 맞아서든, 기존 언론이 불신을 받아서든 트위터는 사실상 언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20년 넘게 기자를 해온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 민주화의 일등공신은 박정희다. 박정희가 산업화로 국민들을 먹고살게 해주지 않았다면 민주화를 꿈이라도 꿨겠나?” 틈만 나면 ‘박정희 찬가’를 부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인터넷 라디오 시사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의 애청자가 됐다. 걸핏하면 ‘좌빨’ 운운하던 그가 왜 ‘나꼼수’를 애청하게 됐는지 묻자 돌아온 답. “좌편향인 줄 알지만 너무 재밌다.” 기존 언론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재미’를 무기로 ‘나꼼수’ 또한 이미 장외언론의 반열에 올라섰다. 오죽하면 집권여당 대표까지 출연했겠는가.

문제는 이들 장외언론이 형성하는 여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데 있다. 아니, 어쩌면 그 편파성 때문에 더 각광받는지도 모른다.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를 뽑은 3일, 무소속 박원순 관련 트윗(1만7377건)은 민주당 박영선 후보 관련(6777건)의 2.6배나 됐다. 경선일을 포함해 직전 일주일의 트윗도 박원순 후보 관련이 2배가량 많았다. 기존 언론이 이렇게 편파보도를 했다간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나꼼수’에는 수많은 음모론이 등장한다. 그래서 재밌다. 동아일보 기자가 기사의 재미를 위해 이런 ‘믿거나 말거나’를 쓰면 당장 사내 기사검증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박살이 날 거다. 그럼에도 아무도 트위터나 ‘나꼼수’가 편파보도를 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같은 기존 언론이 때때로 ‘편파보도 했다’고 욕을 먹는다.

언론 행세하다 책임은 예능으로

게다가 장외언론의 영향력은 얼마나 강한가. 그 파워는 안철수-박원순 바람과 야권 서울시장 경선과정을 통해 입증됐다.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연예인 김제동 씨 등은 벌써 어느 기존 언론인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외언론인’이다. 그런데도 이들 언론, 언론인은 ‘내 맘대로’ 쓰고, 말하고, 칭찬하고, 비판한다. 말 그대로 ‘피 말리는’ 기사 검증과정도 없이.

한국의 언론환경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나 같은 기존 언론인의 책임이 클 것이다. 부끄럽다. 하지만 이제 장외언론도 언론인지, 사담(私談)인지, 예능프로인지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됐다. 필요할 땐 언론으로 행세하다가 책임은 사담이나 예능으로 넘긴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장외언론인들도 정치인-학자-연예인-언론인 역할을 오가면서 좋은 점만 곶감 빼먹듯 한다면 그들을 ‘팔로’하는 이들만 불쌍해진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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