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 생산품목 제한, 일자리 더 없앨 우려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동반성장위원회는 고형 세탁비누 등 30여 개 품목을 1차로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지정하기로 하고 이들 품목을 생산해온 대기업에 대해 사업 이양이나 사업 확장 자제 권고에 나설 예정이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세탁비누, 아워홈은 순대와 청국장 사업을 각각 포기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사업 포기로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소비자의 선택 폭이 제한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워홈은 2009년 100억 원을 들여 경기 안산시에 순대와 편육 생산시설을 설치했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이 시설들을 인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반성장위 측도 “대기업이 포기한 생산시설을 받아줄 중소기업이 없다면 실직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근로자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현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LG생활건강의 세탁비누 공장처럼 자동화돼 있는 공장이 중소기업으로 넘어갈 경우 적합품목 지정의 혜택을 사업주 혼자만 누리게 될 소지가 크다. 정부가 추구하는 동반성장이 이런 것인가.

중소기업 적합품목 제도는 4년 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되살려놓은 것이다. 1979년부터 28년 동안 유지된 고유업종 제도 덕분에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나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사이 외국 기업들이 중소기업 고유업종 시장을 잠식한 사례도 있다. 나약해진 중소기업들은 성장을 포기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1월 모(母)회사가 중견기업 이상이거나, 계열사를 통합하면 중견기업 이상이 되는 기업을 중소기업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올해에만 900여 개 기업이 중소기업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겉으로만 중소기업’ 319곳에 들어간 정책자금이 지난 3년간 7090억 원에 이른다.

헤르만 지몬 독일 마인츠대 교수는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초우량 중소기업들은 성장과 시장 지배에 대한 집념이 경쟁사들보다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보호 울타리를 쳐주면 중소기업의 성장 의욕이 오히려 줄어들기 마련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품목 제도가 앞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어떤 경로로 얼마나 키워줄 것으로 보는지 정책목표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