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경학]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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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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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1. 한여름 오후였습니다. 저보다 열 살 많은 형님은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었습니다.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멜로디가 애잔했습니다. 때마침 어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오시다 기타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어머니 눈에서 갑자기 광채가 솟았습니다. 한걸음에 마루까지 내달으신 어머니는 형님이 치고 있던 기타를 빼앗아 마당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빠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기타는 비명을 지르며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울부짖었습니다. “대학시험이 내일모렌데 베짱이처럼 주야장천 노래만 부르고 있으니 열불이 나서 못 살겠다.” 우리 집에서 기타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형님은 이듬해 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 기타곡이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딸아이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아이의 방문을 살짝 열어봤습니다. 아이는 MP3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검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듣는지 물었습니다. “비틀스 모음집이에요. 난 예스터데이를 들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슬퍼져요.” ‘아!’ 비틀스였습니다. 40여 년 전 어머니가 그렇게 미워했던 비틀스, 두 동강 난 기타와 함께 영원히 기억에 남을 비틀스. 그들의 명곡 ‘예스터데이’가 죽지 않고 딸아이에게까지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MP3를 빼앗아 창밖으로 내동댕이치는 대신 살짝 웃어줬습니다.

비틀스 음악 듣는 딸 보니 뭉클

딸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이 요즘 애들이 즐겨 부르는 힙합과 랩송이 아니라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날 새벽 저와 딸아이는 이어폰을 하나씩 귀에 꽂고 비틀스 노래를 들었습니다. 좋은 음악은 세월이 지나도 오랜 친구처럼 남습니다. 빅뱅과 원더걸스도 좋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콧노래로 들었던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들을 때면 가슴이 뜁니다. 산울림 김창완의 ‘너의 의미’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감동을 줍니다. 빅뱅과 소녀시대의 노래도 많은 시간이 흐르면 남도(南道)의 창(唱)처럼 낯설게 느껴지게 되겠지만 몇 사람이라도 비틀스와 박인환, 김광석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영국 대안학교 ‘서머힐’에 관한 책을 몇 권 읽더니 어느 날 영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겨우 아이를 뜯어말렸습니다. 아이는 다행히 분당에 있는 대안중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선생님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철학과 환경을 배우는 학교생활을 행복해했습니다. 친구처럼 대해주는 교장선생님과 방학이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밤새 대화를 나누는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딸아이는 저와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대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 딸아이는 “학력과 결과주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와 아빠가 뭐가 다르냐”고 반발했습니다. 부녀관계는 파열음을 내며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저와 딸아이는 관계 개선을 위해 딸애가 그렇게도 원했던 영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내셔널갤러리와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초상화박물관 등 아이가 보고 싶어 했던 박물관과 미술관을 순례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신경통을 앓는 할머니처럼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시차와 통증으로 새벽에 깨어난 우리 부녀는 등을 맞대고 책을 읽으며 “여행 와서 이렇게 열심히 독서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한 이스라엘과 이라크를 침공한 영국 정부에 항의하는 시민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약소국 인권을 위해 한 달 넘게 천막시위를 벌이는 모습에 감동한 아이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엇보다 딸아이에게 충격을 준 것은 영국 지하철에서의 뜨거운 독서 열기였습니다. 우리 지하철에서는 승객 대부분이 졸고 있거나 조급증 환자처럼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대영도서관의 규모에 놀라기도 하고, 청교도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이 케임브리지대학 시절 살았다는 기숙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대화하면서 조금씩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딸과 여행하며 서로 다른점 이해

영국 여행이 끝나갈 무렵 딸아이가 뚜렷한 주관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저에게 얼마나 인정받으려 노력하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지만 막상 저는 칭찬과 격려가 인색한, 완벽만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자 아이도 제게 가졌던 서운함을 조금씩 씻었습니다. 신뢰감을 회복하게 된 우리 부녀는 연인처럼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저와 아이는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겠지만 여행이 우리에게 새로운 신뢰와 대화의 통로를 만들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더 늦기 전에 아이와 여행을 떠나길 바랍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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