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나쁜 잡스’ vs ‘착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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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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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CEO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이노베이션(혁신)의 화신’ ‘디지털 시대의 미켈란젤로’ ‘예술가의 감동과 기술자의 비전을 독창적으로 결합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 같은 칭송이 넘쳐난다. 그런데 잡스가 ‘착한 CEO’라는 찬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석 달 전 미국의 CNN은 잡스가 그 뛰어난 인재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모습을 전하며 “애플은 철저한 책무성을 요구하는 잔인한 일터”라고 소개했다. 2009년 미국의 포천지(誌)는 ‘최근 10년의 CEO’로 잡스를 꼽으면서 “폭군적 완벽주의자”라고 했다. 그가 아이팟으로 음악산업을,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을, 아이패드로 미디어세계의 판을 뒤엎을 수 있었던 건 이런 폭군적 천재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반업체와 동반성장만 중시했다면 아이팟 같은 킬러앱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CEO에 꼭 들어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잡스와는 상반되는 이미지다. 의사이면서 밤새워 컴퓨터바이러스백신을 만들어 공짜로 깔아주고, 벤처기업을 차려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고, 1000만 달러에 V3를 팔라는 미국 회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안철수연구소의 사사(社史)는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 얘기처럼 훈훈하다. 모두를 살맛나게 하는 철수를 여야 정치권에서 영입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가 ‘착한 CEO’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기업가로서 안철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근 주간 미디어워치에 정해윤 객원논설위원이 쓴 ‘안철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화제다. 한국 사회에선 선량한 기업가를 위대한 기업가로 인식한다는 거다. 그가 만든 기업이 기술적 혁신을 했는지,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었는지, 인력채용을 많이 했는지 같은 본질적 문제로 판단할 때 기업가로서의 안철수는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착한 CEO만 원하는 정부, 이병철 정주영을 전태일보다 홀대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나라에서 위대한 CEO는 나오기 힘들다. 우리에겐 ‘착한 철수’뿐만 아니라 ‘나쁜 잡스’ 같은 CEO도 필요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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