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김정일 방러 모습… 9년전과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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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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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정치부 기자
김기현 정치부 기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방문 취재를 위해 갑작스러운 출장길에 오르면서 9년 전인 2002년 8월 모스크바특파원 시절에 지켜봤던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떠올렸다. 해외 방문이 드문 북한 지도자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에 가까운 시차를 두고 같은 지역을 다시 찾는 일은 흔치 않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에서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그때나 다를 바 없었다. 러시아 극동지역이라는 같은 방문지뿐 아니라 특별열차를 타고 철저한 보안과 삼엄한 경계 속에 철도 여행을 하는 모습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상한 나라 지도자’의 흥미로운 기행쯤으로 여기는 일반 러시아인들의 반응도 그때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울란우데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메가티탄(거인)’에 들렀다.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경제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9년 전에도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이그나트’를 방문했다. 매장의 상품을 살펴보고 궁금한 점을 상세하게 물어보는 모습도 이번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과연 높아졌는지 따져보면 9년 전 김 위원장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북한의 경제개혁에 얼마나 참고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 사이 북한 정권은 화폐개혁을 단행해 오히려 시장경제로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시도까지 했다.

시찰한 산업단지가 항공기를 생산하는 군수시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 위원장의 머릿속에는 중공업 중시와 선군(先軍)정치가 최우선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 9년 전 의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이었다. 두 사업 모두 남-북-러 삼각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선 성사되기 힘들다는 공통점도 있다. 철도 사업도 전혀 진전이 없는 마당에 다시 새로운 사업을 꺼내든 모습이다.

더욱이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서도 잊혀져가는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을 찾아 고개를 숙이는 장면에선 여전히 낡은 역사에 기대려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했다. 9년의 세월은 김 위원장에게, 그리고 북한에 무엇이었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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