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약도 팔고 담배도 파는 편의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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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뜨겁고도 오랜 논란 끝에 한 달 전쯤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48종의 의약외품(醫藥外品)을 약국이 아닌 편의점 할인점 슈퍼마켓에서도 팔 수 있게 됐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편의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은 1989년 첫선을 보인 이래 문자 그대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올해 말이면 그 수가 1만97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약국도 전국적으로 2만 개 정도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도처에 편의점이다. 인구 3000명당 편의점이 하나인 일본은 흔히 ‘콘비니 왕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구 2500명당 편의점이 하나꼴인 작금의 우리나라는 ‘편의점 제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편의점은 대체로 도시화와 비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날이 위치 불문, 장소 무관이다. 편의점은 마라도에도 있으며 개성공단에도 들어갔다. 지하철이나 병원 학교에서도 성업 중이고 군부대에서도 편의점이 피엑스(PX)를 대체하는 추세다.

편의점은 현대인, 특히 도시인이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 24시간 열려 있는 데다가 밝고 쾌적하며, 깨끗하고 안전하며, 또한 매사가 ‘쿨’하다. 그리하여 작가 김애란은 낯선 곳이나 외진 곳에서 편의점을 만나면 “어떤 상식과 문명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든다고 썼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의점은 우리들에게 “어떤 위치와 방향을 가리켜주는 도시의 성좌(星座)”라고도 했다.

‘도시 인프라’의 사회적 책임

편의점이 현대판 별자리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인지 모른다. 하지만 편의점이 도시의 신종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구멍가게 다방 분식점 만화방 문방구 등이 속속 사라지고 있는데 많은 경우 편의점이 이들을 흡수 통합한 결과다. 그만큼 도시생활의 편의점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편의점은 단순히 상품의 유통채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치안, 행정, 사회복지 등 공적 부분으로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택배는 물론이고 공과금이나 세금 납부도 편의점에서 가능해졌고 청소년이나 노인 보호 기능을 자청하는 편의점도 늘었다.

이런 마당에 편의점이 일부 생활필수 의약품을 판매하게 된 사실은 공익성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편의점이 기왕 사회적 공기(公器)를 자임하는 상황이라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담배 판매는 무언가 어색하다. 흡연의 사회적 폐해야말로 더 언급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명확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담배를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편의점이다. 몇 년 전부터 식당이나 술집에서 담배 판매가 금지된 이후 특히 그렇다. 편의점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상품은 단연 담배다.

우리나라의 편의점은 압도적으로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광그룹의 훼미리마트, GS그룹의 GS25, 롯데그룹의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 등 3대 대형 편의점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결국 재벌기업이 담배 유통의 주역인 셈이다. 편의점 업주들의 처지에서는 현실적으로 담배만 한 효자가 따로 없을 게다. 담배는 스스로 인기상품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미끼상품’으로서 집객(集客)효과 역시 뛰어나기 때문이다. 담배 사러 왔다가 다른 것도 사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편의점을 앞세워 담배 장사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유통구조 자체는 공공이익의 관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시대적 화두로 부상한 시점이다. 공생발전의 개념이나 동반성장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재벌기업들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MRO)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담배 수요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데다가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부정할 순 없다. 따라서 담배를 팔든 말든 그것은 해당업계의 자유요, 선택이다. 하지만 사회적 공헌을 말하기 시작하는 대기업들이 금연운동은커녕 편의점을 앞세워 담뱃가게 역할을 도맡고 있는 현실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재벌 편의점, 담배장사 그만둬야

지난달 말 편의점 업계 1위인 훼미리마트가 국내 최초로 6000호 점을 열었다. 개점식에서 홍석조 회장은 훼미리마트가 전국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의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편의점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싫든 좋든 신종 도시 인프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편의점의 미래와 관련해 백 번 반갑고 지당한 얘기다. 그렇다면 차제에 편의점의 담배 판매 문제도 한번쯤 고민해 보면 어떨까. 사회경제적 손실은 차치하고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연간 5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sang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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