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대통령 연설문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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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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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는 숱한 명연설을 남겼다. 그의 연설은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이제 횃불은 젊은 세대에 넘어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미국 역대 대통령 연설 중 최고로 꼽히는 케네디의 1961년 대통령 취임 연설문의 한 대목이다.

▷미국 언론인이자 변호사인 리처드 토펠은 케네디 연설에 대한 치밀한 취재와 분석 끝에 “취임 연설문 51개 문장 가운데 케네디가 직접 작성한 것은 9개 문장뿐”이라고 주장했다. 케네디 연설문의 많은 부분은 그의 특별보좌관이던 시어도어 소런슨(작년 10월 사망)이 썼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부분은 케네디의 학창 시절 교장 선생이 자주 말했던 “학교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 묻지 말고 너희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를 흉내 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소런슨이 썼건, 교장 훈화를 패러디했건 그 명연설은 케네디의 것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가운데 ‘공생발전’이라는 새 화두는 박형준 대통령사회특보가 주로 개발한 개념임을 청와대 측과 박 특보 본인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혔다. 국민은 대통령 연설을 듣자마자 그것이 참모의 아이디어임을 알게 된 것이다. 박 특보는 언론을 통해 “생태계(ecosystem)란 개념에 발전(development)을 접목했다”며 공생발전의 개념과 어원을 복잡하게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박 특보가 졸업한 대학의 어느 원로 교수는 이번 연설문에 대해 “논문도 아니고, 대통령 연설로는 곰삭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대통령의 연설은 연설 그 자체로 완결성을 보여야지, 비서들이 나와서 긴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잘된 연설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 연설문 기안자는 대필작가(ghostwriter)와 같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통령이 직접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국민도 잘 안다. 그러나 연설문 작성자는 유령(ghost)처럼 뒤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마자 연설문 작성자가 등장하니 대통령도, 참모도 가벼워 보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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