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진성]‘해방’이란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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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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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탈북 시인
장진성 탈북 시인
남한에선 8·15를 광복절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해방절이라고 한다. 남한은 일제 패망과 더불어 수도인 서울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지만 평양정권은 그로부터 3년 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8·15로 갈라진 남북한은 이렇게 출발부터 달랐다. 남한에는 광복이었고 북한에는 고작 식민지 해방이었다. 아니 북한에는 8·15 이후 오늘까지도 아예 해방이란 없었다.

北세습독재 일제보다 가혹

일제 통치의 35년보다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독재가 더 잔인했고 길었다. 그 집요한 세월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자유 해방, 인권 해방, 민주 해방의 환희를 단 하루도 체험할 수 없었다. 제국주의 노예에서 왕조시대의 노예로 더욱 멀어졌을 뿐. 그래서 일제 침략사에도 있을 수 없었던 300만 대량아사가 발생했다.

하루 세 끼 밥의 공포에서도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 그런 생명들을 민족으로 두었기에 사실 우리에겐 친일보다 더 나쁜 짓이 친북행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한에는 김정일 독재 편을 드는 사람들 목소리가 더 크다. 시위의 앞장에 서고, 높은 연단에도 오르고, 심지어는 대한민국 법정에서까지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친다. 최근 드러난 ‘왕재산사건’의 주범들도 과거 같았으면 간첩으로 응징됐을 법도 한데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요즘 말로 ‘진보’ 혹은 ‘좌익’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동명으로 동거하는 한국의 좌익이 의아하다. 정상적 좌익이라면 김정일 독재를 반대하는 나 같은 사람이어야 할 텐데 한국은 마치 친북식 좌익이 대세인 듯하다. 그들은 남한의 유신체제를 반대했다고 하면서도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에는 줄곧 침묵한다. 남한의 군사정권에 맞서 피를 흘리며 싸웠다고 하면서도 정작 김정일 독재와는 평화 공존을 주장한다. 남한에 대해서는 언제나 과격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어뢰를 쏘고 대포를 쏴도 무조건 관대한 그들이다.

하긴 나는 그들의 생존 민주주의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광장에서 함부로 어르신들을 조롱해도 용인되는 예의 없는 민주주의였다. 아기를 인간방패로 삼으면서까지 모성애를 왜곡하는 비정한 민주주의였다. 대한민국 법치를 죽창으로 찌르고 불을 지르며 희열을 느끼는 ‘떼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좌우 갈등은 이념문제가 아니다. 문명의 대립이며 원칙의 충돌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충분히 성숙했는데도 아직도 독재를 찾아 거리로 나오고 광장을 점거하는 덜 성숙된 좌익의 침체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이 탈북자가 본 대한민국은 국민민주주의 선진국이 아니라 좌우민주주의의 후진국이다. 분단민주주의가 분단조국으로 이어져 눈앞의 통일에도 눈 감는 현실이다.

친북좌익, 北해방에 ‘방해’

‘해방’이란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방해’가 된다. 그렇듯 거꾸로 투쟁하는 친북좌익 세력에 의해 북한 해방이 방해가 된다고, 남과 북이 함께 웃을 8·15 광복절이 멀어진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장진성 탈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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