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중학생 엄마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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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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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난센스 퀴즈 하나.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는? 1990년대 중반 이전이라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방위병이 무서워서’였다. ‘유사시 포로가 되어 적의 식량을 축낸다’, ‘도시락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등의 전시 방위수칙이 당시 우스갯소리로 떠돌곤 했다.

최신 버전 정답은 ‘남한의 중학생들이 무서워서’란다.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얘기다. 자녀 수가 적어져 오냐오냐 키운 요즘 아이들은 세상 무서운 게 없다.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덩치는 어른만 해졌다. 웬만하면 엄마보다 몸집이 커서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춘기라 걸핏하면 신경질이나 부리기 일쑤다. 부모에게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많은 엄마들이 “고교는 기숙사 있는 학교로 보내는 게 소원”이라고 할까. 북한이 남한을 점령해도 이 녀석들만큼은 어찌할 자신이 없어 남침을 꺼린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교사들의 고충이 심하다. 다음은 최근 언론에도 보도된 내용이다. 어느 중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여교사에게 학생들이 첫 경험이 언제인지 물어보는 등 성희롱을 서슴지 않았단다. 주의를 주려고 다가서니 한 학생 왈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네.” 서울시내 중학교에서 기간제 여교사로 근무하는 한 선배 부인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아줌마’라고 부르는 학생도 많다”며 “체벌 금지 이후 더욱 심해져 이젠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 때문에 중학생 엄마들을 만나 하소연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엄마들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중학생 자녀의 유형은 대체로 비슷하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는 열광하는 반면 싫어하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악성 댓글을 달 정도로 연예인에게 민감하다.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누워 줄곧 노래만 따라 부른다. 친구들과는 전화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하루 종일 수다를 떨지만 정작 부모와는 하루에 한두 마디도 제대로 안 한다. 컴퓨터 게임은 몇 시간씩 집중하면서도 공부할 때는 몇십 분을 자리에 못 앉아 있는다 등등.

이들 부모의 고민은 대부분 “아이가 목표가 없는 것 같다”로 귀결됐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깨치기는 쉽지 않은 주제다. 결국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얘기다.

중학생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엄마 쪽이 더하다. 어렸을 때야 내 아이가 천재인 듯싶다(착각으로 밝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고교에 진학하면 떨어진 성적을 만회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학생 때가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마음만 조급해진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제도도 부모에겐 스트레스다. 외국어고에 보내야 할지, 자율형사립고에 보내야 할지, 일반고에 보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백 년은 고사하고 몇 년이라도 버티는 교육정책과 제도가 별로 없다. 대학입시 전형 유형도 수백 가지라는데 나만 정보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엄마들은 스스로를 ‘불량엄마’라고 부르며 자조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들을 ‘불량’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아, 내년이면 나와 아내도 중학생 학부모가 된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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