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창현]삼성 MRO사업 철수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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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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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아르셀로미탈은 세계 1위 철강기업이다. 오너 경영자인 락슈미 미탈 회장은 17회에 이르는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철강회사를 만들었다. 그가 대형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 배경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철강회사의 규모가 커야 철광석 구매에서 교섭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의 철강공장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철광석 구매는 한곳에 몰아서 진행한다.

한 기업의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즉 규모가 커질수록 평균생산비가 줄어드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규모의 경제’라고 부른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기술이 축적되기도 하고 종사인력이 많아지면서 분업이 촉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생산량이 커질수록 원료 내지 자재의 구매단가가 하락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사업도 이런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문구류 등 여러 가지 소모성 자재와 서비스를 한 기업을 통해 일괄 구매한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MRO 담당 기업이 대규모 구매를 하면서 엄청난 교섭력이 생기는 바람에 납품조건이 열악해지고 납품업체들이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구매 대행을 하는 MRO기업의 지분을 모기업이 보유한 상황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모기업이 다시 가져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규모의 경제가 창출하는 수익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이 되는 것이다. 경제의 운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효율과 형평의 달성이라고 할 때 효율성은 상당 부분 확실하게 달성되지만 형평성이라는 기준에서 점수가 낮아져버린 것이다. 물론 기업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장려되어야 하지만 ‘효율’의 추구가 ‘형평’과 지나치게 충돌한다면 한번쯤 돌아볼 필요도 있다.

삼성이 MRO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구매대행 기업의 지분을 처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들은 그동안 여러 노력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추구해 왔고 많은 가시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것도 사실이다. 1차 협력업체의 경우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2, 3차 협력업체에까지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고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삼성이 구매대행 사업의 철수를 결정한 것은 최근 우리 경제 내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형평에 대한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제를 지속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동시에 국민기업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MRO 구조를 유지하려는 다른 기업들에 압박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기업별로 상황에 맞춰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유연한 접근도 동시에 필요하다.

형평성과 효율성은 아름다운 가치이지만 세계 그 어느 국가나 사회도 이를 100% 달성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반성장과 상생협력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가치들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삼성의 조치가 이러한 가치를 달성해 가는 데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면서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라는 거대담론을 추구함에 있어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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