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 이승만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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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20시 00분


권순택 논설위원
권순택 논설위원
지난주 폭우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 기념관이 있는 이화장(梨花莊)에 산사태가 났다. 이화장 뒤편 언덕이 무너져 기념관 벽이 부서지고 토사가 침실까지 밀려들었다. 그 소식에 지난해 여름 찾아간 이화장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낙산공원 중간에 있는 이화장은 일반에게 공개돼 있지만 평소 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안내자도 없어 혼자 둘러봐야 한다.

이 대통령은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해서 이화장에 살면서 대한민국 국회 초대 의장과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대통령이 초대 내각을 구성한 조각정(組閣亭)도 여기 있다. 이화장 본체가 이 대통령 부부의 유품들을 전시하는 기념관이다. 이화장은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현장인데 산사태가 났다니 평소 주변 관리가 어땠는지 알 만하다.

지난해 이화장을 둘러보면서 느낀 실망은 꽤 컸다. 이 대통령의 유품들은 대부분 빛이 바래고 낡아서 과연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본체 바깥에 전시된 흑백사진들은 심하게 퇴색해 있었다. 기념관 바깥 정원은 제법 잘 가꿔져 있었지만 내부는 몰락한 양반가의 제대로 손을 보지 않은 한옥처럼 쇠락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세계 10위권 경제국가인 나라의 건국 대통령의 사저 기념관이 이런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사실 이화장에 찾아간 것은 지난해 여름휴가 때 강원도 고성 화진포의 이승만 대통령 별장에 들른 게 계기였다. 이 별장은 근처에 ‘김일성 별장’으로 잘못 알려진 ‘화진포의 성’과 자유당 시절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별장도 있어 방문객이 많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잡다한 유품들이 전시된 별장은 외국의 시골 골동품 가게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화장은 어떨까 궁금해서 찾아갔는데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건국에 공헌한 대통령을 이렇게 홀대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유품조차 허술하게 관리하면 머지않아 우리의 기억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아닌가. 건국 대통령의 공식 기념관이 없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좌파들은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때 친일파 기용, 남한 단독정부 수립, 부정선거와 장기집권 등을 이유로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지만 공과(功過)를 모두 보여주는 기념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때문에 사임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캘리포니아 요바린다의 생가 기념관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올 4월 재개관한 닉슨 기념관은 그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해석한 전시물들로 닉슨 비판자들로부터도 박수를 받았다.

올해 KBS 8·15 광복절 특집 5부작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편 방영이 불투명해진 것도 건국 대통령 홀대와 무관치 않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부 때 좌파 인물 열전(列傳)을 숱하게 방송한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KBS는 이 특집극에 대한 안팎의 시비를 의식해 외부인사들로 평가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KBS 관계자는 “자문단 평가를 거쳐 방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예정대로 8월 15일 방영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 기간이 더 필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번영의 과실을 다 따먹으면서 대한민국을 악의적으로 폄훼하는’ 좌파세력 눈치 보느라 수준 낮은 작품을 만들 거면 방영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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