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공공기관 고졸자 채용’ 한방에 해결될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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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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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이상훈 경제부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률이 1%에 불과하다는 동아일보 보도 이후 각 공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향후 고졸 채용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을 늘려야 한다”고 국무회의에서 밝히자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이 고졸 출신을 뽑으면 경영평가 가점을 주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에 이어 교직원공제회,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앞다퉈 고졸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겉으로만 보면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학력차별 문제가 곧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과 공공기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졸 채용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올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예정인원 250명 중 100명을 고졸자에게 할당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단 한 명의 고졸자에게도 문호를 열지 않던 곳이 불과 일주일 만에 고졸 자리 100개를 만든 것이다.

아직 채용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기관들은 구석에 숨어있을 고졸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이 기회에 어떻게든 몸집을 불리려는 곳도 있다. 재정부가 최근 마련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 간담회에서는 “정원이 한정돼 여력이 없다. 고졸자에 한해서라도 정원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참에 고졸 출신을 받아 덩치도 키우고 경영평가 점수도 잘 받겠다는 계산이다.

공공기관들의 고졸 채용계획이 지속가능하지 못한 것은 정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전문계고 일자리 문제는 공공기관이 자리 몇 개 만들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대학 진학률 80%’라는 학력 인플레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시키니, 정부가 권고하니 일단 뽑고 보자는 지금의 채용 열기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2009년 ‘일자리 나누기’라는 미명 하에 신입직원 연봉만 깎았다가 최근 불거진 금융회사 내 갈등에서 보듯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책은 반드시 후유증을 낳는다.

고졸자 할당을 늘리는 식의 ‘묻지 마 채용’에 나서기 전에 고졸 출신이 할 수 있는 직군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졸-대졸-석·박사가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건강한 직업 생태계 마련이 우선이다. 철저한 직무분석 및 마이스터고와 산학협력 양해각서(MOU)를 통한 맞춤형 인재 수급 등 지속가능한 고졸 일자리 창출에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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