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우혜]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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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세상은 신비하다. 낯익은 지 오래된 사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전에는 기독교의 구약성경에 나오는 ‘겉옷 담보’에 관한 이야기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겉옷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었더라도 채무자가 날이 저물도록 돈을 갚지 못하면 겉옷을 그냥 돌려주라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은 있다. “사막지대는 밤이 되면 기온이 몹시 내려가서 아주 춥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은 겉옷을 이불 삼아 덮어야 잘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날이 저물도록 돈을 갚지 못하면 담보물인 겉옷을 그냥 돌려주도록 명한 것이다” 운운하는 말이 따른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어딘가 석연찮은 마음이 남았다. 그렇다면 겉옷을 담보로 잡는 일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게 했어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이 바로 그 사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향기’라는 단어를 썼다. 돈을 받지 못했더라도 채무자가 밤에 겪어야 할 심한 추위를 생각해서 겉옷을 돌려주었을 때,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도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권자가 그냥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잘 알고 있던 이야기에 단지 ‘향기’라는 말을 추가한 것인데, 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비의(秘意)가 새롭고 깊게 느껴졌다.

추운 밤에 ‘겉옷 담보’ 돌려주라

그 지인은 ‘세상의 향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바가 있었던 듯했다. 메리놀 수도회 소속의 미국인 에드워드 J 휠런(한국명 안예도·77)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했다. 한국에 온 지 40년 되는 그 신부님이 생애 전부를 바쳐서 한국 장애인에게 봉사와 헌신을 묵묵히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향기’라는 말을 썼다. “그분의 생애 전체가 맑고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도달하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이 세상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맑고 고운 향기들의 존재가 비로소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향기들이 이 세상을 진정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인가.

얼마 전에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에 갔다. 애광원은 김임순 원장(86)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전쟁고아들을 위하여 세운 보육원이 모체로서, 장애인 재활 및 보호를 주요 업무로 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정성 들여 보살피는 원생들과 운영하는 각종 시설을 돌아보면서 깊이 감동했다. 처참한 전쟁의 화마에 휩쓸려서 버림 받은 어린 고아들을 거두어 기르기 시작한 이래 어언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오로지 봉사의 한길을 걸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끝없는 헌신을 계속해온 김 원장님의 생애가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면 그분의 생애 또한 신 앞에 도달할 지극히 맑고 아름다운 향기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그에 대한 평가를 ‘향기’라는 말로 환치해보면 그 본질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한 사람의 생애와 업적이 신 앞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참되고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진실이고 진심이다. 얼마나 참다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위해서 애썼는가. 오직 그것만이 제대로 된 향기가 될 수 있는 요소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날로 이전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점점 늘어가는 점이 그것이다. 돌아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에 없이 다양하고 진심을 담은 것으로 바뀌고 있는 점이다. 후진국 출신의 외국인이나 문화에 대하여 지극히 배타적이고 고압적이던 정서들이 이제는 크게 순화되고 정제되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도 많이 신장되어 대안학교 같은 대체방안이 날로 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보살핌 늘어나야

사회 극빈층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도 전보다 크게 나아지고 있다. 현재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정규 프로그램 중에 극빈층의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를 찾아내어 보호시설로 안내하여 편안한 삶을 살아가도록 조치하는 것이 있다. 그런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작되고 시청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그런 조치들을 진심으로 반기고 크게 평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돌아보면 그런 현상들은 모두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솟아올라서 세상의 더러운 악취를 정화하고 있는 진정한 향기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런 향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고 추구하는 한,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swoohy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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