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식]‘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검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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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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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보스(검찰총장)가 물러났건만 싸늘하다. 밀어낸 부하들은 민망하다. 지지하는 사설 하나 없고 욕만 듣다니. 물러난 사람에게 다시 책임을 지라 할 수도 없고….

이로써 주연급 형들(대검찰청 검사장들)의 줄사표 소동과 조연급 동생들(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의 긴급모임 등으로 우당탕거렸던 옴니버스 부조리극의 막이 내렸다. ‘검찰의 집단반발’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연극에 냉소적 눈길을 보낸 건 압도적인 표차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만이 아니다. 관객인 국민의 절반 이상(51.6%)이 ‘밥그릇 지키기 시위’라고 혹평했다. 검찰 의견에 찬성한다는 국민은 10명 중 3명(32.9%)이었다. 무응답이 15.5%.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검찰의 위기다. 사실 검사들이 못 들은 척해서 그렇지 위기의 경보음은 진작 울려왔다. ‘스폰서 검사’니 ‘그랜저 검사’니 최근의 불미스러웠던 사건을 들먹일 것도 없다. 고객인 국민의 직접적인 평만 보자.

검찰은 2009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국가 주요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로 내몰렸다. 지난해는 끝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10년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도 검찰(대검)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38개 중앙행정기관 중에서 가장 청렴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란 여간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경찰에 줄 건 주고 싶다. 다만 후배들 보기가 미안해서….”

‘긴급모임’에 참석했던 한 부장검사의 푸념이다. 이 말에서 총장 사퇴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국민이 아니라 후배들 보기 미안해 물러난다는 것. 검찰 간부들의 집단행동도 이 안쓰러운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을 걱정한 게 아니라 후배 검사들을 의식한 것이라는.

여러 소리 할 것 없다. 검찰의 위기는 조직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검찰을 위한 검찰인 것이다. 더러 국민의 검찰이라는 칭송도 받고, 때로 정권을 위한 검찰이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검찰은 늘 스스로를 위해 존재해 왔다. 수사권 조정을 소비자인 국민이 아닌 조직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검사의 수사지휘 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된 걸 두고 하찮은 경찰과 대등해진다고(실제로는 여전히 상하관계지만) 화낼 게 아니라 경찰처럼 성명이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재경지역 한 검사장은 검찰의 위기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독점기업의 폐해에 빗대 진단했다. 독점의 권력에 취하다 보니 고객에 대한 봉사정신이 사라지고 지속적 발전을 위한 내부 혁신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수사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수사권 독점의 시대는 갔다. 선진국에선 이미 상식이지만.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를 막아낸 걸로 족하다. 예수의 말씀을 비틀자면, 검사들이여, 수고하되 무거운 짐은 내려놓기를. 검찰이 사는 길은 아우인 경찰과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공명정대한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예컨대 정권의 약점을 쥐었다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수사에서 외압 소리가 안 나와야 한다.

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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