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MB 탈당’ 말리는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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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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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한나라당 새 대표를 뽑는 선거운동 기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승민 후보의 이명박(MB) 대통령 탈당 관련 발언이었다. 유 후보는 “이 대통령은 탈당하지 말고 정권 재창출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어제 전당대회에서 2위로 최고위원이 된 그는 친(親)박근혜계다. 요즘 친박 진영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탈당 없이 대선을 치러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3월 말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 당시 대구지역 일부 친박 의원들이 공공연히 MB의 탈당을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MB는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아마 화가 나신 분들이 하신 말씀 아니겠는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정치인의 말은 다의적(多義的)이다. 겉뜻과 속뜻을 함께 살펴야 한다. 유 최고위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언뜻 들으면 MB와 박 전 대표의 상생(相生)을 강조한 것 같지만 뒤집어 보면 박 전 대표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 MB의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다른 친박 인사들의 의중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4명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임기 전에 여당을 탈당했다. 아직은 현직 대통령의 탈당 얘기가 나올 시기는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이 있던 해 10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1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월 탈당했다. 실제 탈당하기 한두 달 전부터 심심찮게 탈당이 거론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 3월부터 MB 탈당 얘기가 비집고 나온 것은 퍽 이례적이다. 나쁜 징조일 수도 있고,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탈당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관권 선거 개입의 폐습 청산’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민주자유당 대선후보인 YS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YS는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바라지 않았다. 반면 대통령 YS는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겸 대선후보의 탈당 요구에도 한동안 버티다 경북 포항의 당 행사에서 자신을 상징하는 ‘03 마스코트’ 구타 사건이 발생하자 탈당해 버렸다. DJ는 세 아들과 최측근(권노갑)의 비리 연루와 관련해 당 안팎의 요구에 따라 탈당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를 살리기 위한 ‘위장 탈당’의 성격이 강했다. 노 후보는 DJ의 탈당을 적극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대도 안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심 이반이 심해 스스로 여당 간판을 내리려는 열린우리당 사람들에게 사실상 등 떠밀려 탈당했다.

현직 대통령의 탈당은 5년 단임 대통령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취지에 반한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악폐다. 나는 어떤 이유로도 한나라당 사람들이 MB의 탈당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MB 또한 끝까지 한나라당과 운명을 같이하기를 바란다. 그런 선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당하면서 “야당은 대통령 공격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게 돼 있어 대통령은 집중 공격의 표적이 된다. 여당 또한 대통령을 방어하는 것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구조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여당 후보에게 도움이 될 만큼 국민의 지지가 높아야 하지만 역량이 부족해 그렇지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나라당과 MB가 이 시점에서 새겨볼 만한 말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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