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富의 편법 대물림,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한국기업의 현실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一家), 특히 총수의 직계 자녀가 대주주인 전산 물류 유통 계열사를 만들어 영업에 나서면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이 회사와 집중적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다. 외부의 기업이 파고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격 부풀리기가 생길 여지도 커진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경영과 이를 통한 부(富)의 편법 대물림은 시장경제의 핵심 원칙인 공정경쟁에 위배될 뿐 아니라 창의 효율 혁신을 억누름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을 저해한다. 부의 편법 대물림이 만연하다 보면 시장자본주의 자체가 국민에 의해 거부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작년 말 기준으로 29개 그룹, 85개 회사 지배주주 가족의 주식 시세차익과 배당수익을 분석한 결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109명이 10조 원에 가까운 재산을 늘렸다고 발표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신세계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와 자녀 상당수가 포함됐다. 자료의 각론이 정확하고 객관적인지를 둘러싼 논란도 일부 제기되지만 큰 흐름에서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어제 당정(黨政)협의를 갖고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상속세와 증여세를 물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대기업의 편법적 상장(上場) 차익에 대한 과세를 요구했다. 정부는 “신중하되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어 8월 세법 개정안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재계는 “감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세금폭탄을 퍼붓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 가치가 오른 부분까지 증여세와 상속세를 물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기업을 죽이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명백히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부의 대물림이라면 과세 정도에 그치지 말고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 행위 및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법적 견해도 만만찮다.

대기업이 우리 경제 발전과 소득 향상,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량 대기업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도 컸다. 하지만 기업이나 기업인의 불법 탈법 편법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재계에서는 “최근 생긴 문제도 아니고 종전부터 내려온 것인데 왜 갑자기 이러느냐”며 불만을 터뜨리지만 잘못된 관행의 병이 깊어지면 시장자본주의의 위기를 부를 우려가 있다. 대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공동체가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대기업이 총수 자녀나 친척이 대주주인 비상장 계열사에 집중적으로 물량을 몰아주고 단가를 부풀려 부의 편법 대물림을 돕는 잘못된 관행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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