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기름값 통제수단 있는데도… 14년동안 사용안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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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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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정치부
동정민 정치부
‘기름 사재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된 ‘기름값 L당 100원 인하’ 조치의 만료 시점(6일)이 임박하면서 곧 L당 20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기름값이 L당 1100원대에 머물던 것에 비춰볼 때 지금의 기름값 인상 추이를 보면 일부 국민의 사재기 심리를 무조건 나무라기도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 1월 “기름값이 참 묘하다”고 한마디 한 뒤 정부가 온갖 법석을 떨며 내놓은 대책이라곤 정유사의 손목을 비틀어 딱 3개월간 L당 100원을 인하시킨 것 외엔 없다. 실제 기름값이 급등하는 동안 정부는 정유사들에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하기는 했지만 기름값 자체의 조정에 대해서는 “정유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발을 빼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소극적 태도는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30일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부는 기름값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두 개나 갖고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제23조에 따르면 국가는 석유값이 현저히 오르거나 오를 우려가 있을 경우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을 정할 수 있다. 또 같은 법 18조에 따르면 정부는 국제 석유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인해 과다한 이윤을 얻게 되는 석유정제업자 또는 석유수출입업자에게 판매부과금을 부여할 수 있다.

1997년 유가 자유화에 따른 기름값 폭등 등을 방지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었다. 그러나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이후 1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최고가격제도와 과다한 이윤에 대한 판매부과금제도를 실행한 적이 없다. 취재 결과 정부의 관계자 중에는 심지어 이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석유가격의 최고액을 정할 경우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분을 보전해주기 위한 유가완충금은 매년 예산에만 잡아놓고 쓰지 않다가 지난해엔 아예 그 항목을 없애버렸다.

김 의원이 “유가 자유화를 통한 석유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가격 급등 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이런 이유다. 정부의 섣부른 기름값 개입은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법적 수단까지 사문화(死文化)시킨 채 별 방도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데는 뭔가 밝히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동정민 정치부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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